권력핵심들 줄줄이 `불행한' 말로

이후락(李厚洛.85) 전 중앙정보부장이 31일 노환으로 별세하면서 `유신시대'를 대표했던 권력 실세들이 속속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권력의 화신들' 불행한 최후 = 유신 시대는 사실상 헌정이 중단된 특수한 상황이었던 만큼 역대 정보기관장들은 `무소불위'의 힘을 구가했다.

하지만 그들의 말로(末路)는 한결같이 불행을 면치 못했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뒤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쐈다"고 말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1976.12∼1979.10 재임)은 다음날 새벽 국방부에서 체포됐다.

`12.12 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한 신군부에 의해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 이듬해 1월 육군 고등군법회의에서 김 부장과 부하들은 사형을 선고받았고, 그해 5월24일 형이 집행됐다.

죄목은 내란목적 살인 및 내란 미수죄였다.

앞서 무려 6년3개월이란 긴 세월동안 중정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숱한 `정치공작'으로 악명을 떨쳤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1963.7∼1969.10)씨도 재임중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실세로 군림했다.

하지만 그는 퇴임 후 미국으로 망명해 유신정권을 비난하다 1979년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된 뒤 아직도 그 죽음의 진실이 명쾌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최근 김경재 전 민주당 의원이 펴낸 회고록에서 김 전 부장은 `천보산'으로 불리던 조용박이란 이중간첩에 의해 암살됐고, 차지철 전 경호실장이 암살을 주도했다고 밝혔으나 사건의 진실은 아직도 미궁속이다.

김형욱과 이후락 사이에 1년여간 중앙정보부를 이끌었던 김계원(1969.10∼1970.12) 전 부장은 이후 청와대 비서실장을 역임하고 `10.26 사태' 현장에서 유일하게 생존했으나 오랜 시간 침묵을 지키며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

유신 당시 차지철 경호실장은 박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바탕으로 `권력 2인자'로서 철권을 행사하며 권력을 남용했지만 10.26 현장에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을 피하지 못했다.

◇정.관계 인사들 `조용한' 칩거 = 명실상부한 `박정희의 2인자'였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박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공화당 총재가 됐으나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부정축재자로 지목돼 재산환수의 수난을 겪었다.

김 전 총리는 1987년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한 뒤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며 1990년 `3당 합당', 1995년 자유민주연합 창당, 1997년 `김대중-김종필(DJP) 연합' 등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이어갔다.

그는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한나라당에 입당했으며, 현재 당의 명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지난해 말 초기 뇌졸중 증세로 입원 치료를 받고 지금은 자택에서 요양중이다.

박정희 정권의 고도성장을 기획한 남덕우 전 경제부총리는 10.26 사태 이후 국무총리에 오른 뒤 지금은 경제인들을 중심으로 `한국선진화포럼'을 꾸려 이사장을 맡고 있다.

또 김용환 전 재무부 장관은 한나라당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그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전 대표를 도왔다.

재무부.상공부 장관을 지낸 김정렴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 이사장직에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종우 기자 jongw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