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엔 한국전쟁만 기술...한국 경제성장은 부각

러시아 교육과학부가 올해 신학기(9월 개학) 슈콜라(초·중등 과정) 교과서로 승인한 한 역사교과서에 북한 체제를 신랄히 비판하는 내용이 실린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러시아 교과서로는 처음으로 1960~70년대 북한 김일성 체제는 물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핵 문제까지 언급, 러시아인들의 북한에 대한 시각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연합뉴스가 28일 입수한 이 교과서는 러시아의 대표적 교과서 전문 출판사인 `프로스베셰니에(계몽)'가 우리의 고등학교 3학년에 해당하는 11학년생의 2009년도 신학기용으로 만든 것으로 모스크바 국립대(엠게우) 역사 교수 3명이 공동 저술했다.

이 교과서 제2장 `세계 양극체제 형성' 편에 한국전쟁을 소개하고 있지만 이 부문은 북한의 남침을 재확인한 것으로 다른 러시아 역사 교과서에 다뤄진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같은 장 `세계 사회주의 체제와 그에 대한 반발'이란 항목에서 다루는 내용이 눈길을 끈다.

1960~70년대 북한에서는 수정주의자로 비난받은 사람들을 공개 비판에 처하고, 체포해 교도소나 교화소로 보내 중노동을 시켰고 때로는 죽이기도 했다고 기술했다.

또 경제, 정치, 이념, 문화, 교육 그리고 개인적이고 가족적인 상호관계까지 사회생활의 모든 면이 국가와 노동당의 엄중한 통제 하에 놓였으며 북한 주민에게 김일성은 살아있는 신과 유사한 존재였다고 소개했다.

이와 함께 김일성 주체 사상이 당과 국가의 공식 이데올로기로 선언됐고 북한 주민들은 공식 매체를 제외하고는 어떤 대중매체도 접근할 수 없었으며 각 매체는 끊임없이 김일성을 찬양했다고 적었다.

특히 제3장 `20세기 말-21세기 초 발전도상 국가들' 편의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 대목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젊은 시절 사진과 함께 기술한 북한 체제 비판은 파격적이라는 게 역사 전문가들의 평가다.

교과서는 북한에서는 전체주의적 공산주의 정권이 유지되고 있으며 조선노동당이 국가를 지도하고 있고 경제는 완전히 국가에 의해 통제된다고 설명했다.

또 기업들은 경영의 자율성이 없고 기업들은 국가계획에 의해 지도되며 이 계획은 무엇을, 어떻게, 얼마만큼 생산하고 생산품을 어디로, 어떤 가격으로 보낼지를 규정하고 있다고 기술했다.

덧붙여 정치적 자유는 없으며 대중 매체는 가장 엄격한 검열을 받고 있는데 2천300만 주민을 가진 이 나라는 가난 속에서 경제적으로, 이념적으로 외부와 완전한 격리된 채 살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의 등장과 관련해 교과서는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당과 국가 권력이 공식적으로 그의 아들 김정일에게로 이양됐고 김정일은 기존의 질서를 신성불가침으로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주변국에 대한 북한의 태도와 북한 핵 문제에 대해 언급은 교육 현장을 넘어 정치, 외교적 의미도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교과서는 북한 당국이 자신들이 한국과 미국으로부터 공격 위협을 받고 있다고 주민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2002년 북한의 핵무기 제조 사실이 밝혀져 미국이 북한에 연료 공급을 중단했고, 북한은 핵 비확산 조약(NPT)을 탈퇴하고 2006년 7월 탄도미사일 실험을 했으며, 그해 10월에는 지하 핵실험을 해 유엔이 비난 결의안을 채택했다고 언급하는 등 그간의 상황을 자세히 기술했다.

2006년 12월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회담이 한국,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참가한 가운데 재개됐음을 소개하면서 북한은 자신들의 핵 프로그램 중단 대가로 끊임없이 경제적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고 교과서는 지적했다.

이 문장 바로 뒤에 이어지는 `한국'이란 항목의 글에서는 한국의 `경이적인 경제성장과 산업발전'을 소개해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모스크바의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과 전통적으로 가깝다는 러시아 교과서에 이런 비판적 논조의 글이 실린다는 것은 의외다"라면서 "이는 러시아 학자들이 북한에 대해 어떤 역사 인식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스크바 슈콜라의 역사 교사인 슈쿠노바 올가 씨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기껏해야 한국 전쟁에 대한 언급뿐이었는데 북한 체재를 비난하는 내용을 실은 교과서는 처음이다"며 "러시아 역사 교사는 물론 어린 학생들조차 북한에 대한 시각이 변하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한 명의 현지 역사 교사는 "러시아가 현재 한반도 문제에 깊숙이 개입해 있는 상황에서 언제까지나 한국전쟁에 대한 언급에만 그칠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앞으로는 다른 교과서에도 유사한 내용이 실릴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남현호 특파원 hyun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