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제안설' 논란 속 정부 입장 드러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방북을 초청했다는 미국측의 발언으로 야기된 논란은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양국 정부의 해명으로 수습되는 양상이다.

하지만 외교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가 견지하고 있는 원칙이 분명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다시 말해 현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문제에 관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지만 북한이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를 중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이 18일 "이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정략적, 정치적, 전술적 고려를 깔고 진정성 없이 만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밝힌 것이 정부의 의중을 가장 잘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말하자면 남북 정상이 만날 수 있는 여건이 성숙해야 한다는 얘기다.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고 대남 적대 정책을 바꾼다는 뚜렷한 동향이 있어야 한다'는게 그 필요조건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남북관계와 비핵화를 연계하는 것이 이명박 정부 대북 정책의 큰 특징이고, 이것이 과거 정부와의 차별화된 원칙으로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19일 한국언론재단 주최 외신기자 세미나에서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진정성 여부는 북한이 비핵화 논의에 얼마나 성실히 응하느냐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핵무장한 북한과 협력하며 공존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대북 정책의 주안점은 비핵화에 주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북한이 핵 포기 결심을 보여주면 우리 정부는 적극적으로 이에 호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남북관계 주무부처인 통일부의 현인택 장관도 지난달 한미클럽 세미나에서 "남북대화에서 모든 문제가 논의돼야 하며 거기에는 당연히 핵문제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관심은 이런 연계론이 현실 외교세계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어떤 결과를 낳느냐로 귀결된다.

의견은 분분하다.

우선 지난 6년 이상 진행돼온 북핵 6자회담 과정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북한의 살라미 전술(요구조건을 세분화해 협상을 길게 끌고 가는 전술)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는 핵 연계론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개진한다.

다시 말해 북한의 일련의 평화공세가 핵개발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한 속셈에서, 또는 식량지원을 포함한 경제지원을 최대한 받아내기 위한 임시방편용 전술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에 쉽게 대응하지 않고 원칙을 견지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비판적인 사람들도 일단 지난 북핵 협상과정이 지나치게 시간을 허비한 점에 대해서는 '반성할 점이 있다'는데 동의한다.

그러나 핵 문제가 갖는 독특한 특성과 북한의 지정학적 위상 등을 감안할 때 불가피한 측면이 있으며 지금도 이런 특성은 여전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특히 대북 제재와 함께 북한을 6자회담 장으로 복귀시키려는 미국이나 중국과는 달리 자칫 의도와 는 상관없이 북한과 각을 세우는 모습으로 비춰짐으로써 향후 북핵 협상장에서 한국의 역할과 위상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남북관계와 핵 연계론을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는 것과 상관없이 우리 정부가 설정해놓은 '비핵화'의 개념부터 분명히 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한 외교소식통은 "실제로 정부 당국자들에게 '비핵화의 의미'를 물어보면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답변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곤 한다"면서 "국제사회에 통용되는 분명한 개념정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도 대통령 후보시절 '선(先)핵폐기 후(後)지원'을 골간으로 한 '비핵.개방 3천' 구상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당선 뒤에는 '북한이 핵폐기 과정에 들어가면'이라고 했다가 지난 8.15 경축사에서는 '북한이 핵 포기 결심만 하면 북한 경제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도록 국제협력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는 등 전제조건을 점차 낮춰왔다.

결국 이 대통령은 지난달 방미 과정에서 '북핵 폐기와 동시에' 북한에 안전보장과 국제지원을 본격화하는 일괄타결, 즉 그랜드 바겐을 제안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최소한 '개념'을 둘러싼 논란'이 야기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상정하고 있는 비핵화나 그랜드 바겐의 내용을 합리적이고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울연합뉴스) 이우탁 기자 lw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