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근 방미 허용..치열한 '탐색전' 예고

미 국무부가 북한의 6자회담 차석대표 리근 외무성 미국국장의 방미를 허가한 것으로 17일 확인됨에 따라 북.미간 실무접촉 성사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리 국장의 이번 방미는 공식적으로 이달 26∼27일 열리는 동북아시아 협력대화(NEACD) 참석 차원이지만 북.미 양자대화에 앞서 양국 핵심 당국자들이 자연스럽게 사전 접촉할 기회가 될 것이라는 게 소식통들의 관측이다.

한 외교소식통은 "양측이 본격적인 대화에 앞서 서로의 의중을 탐색해보는 기회를 가지려고 한다"며 "리 국장의 방미는 그런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외교가가 특히 주목하는 대목은 미국이 리 국장에게 비자를 내주면서 행선지를 동부의 뉴욕으로까지 넓혀준 점이다.

NEACD 회의는 미국 서부 샌디에이고에서 열린다.

이는 NEACD 회의에 이어 30일 뉴욕에서 열리는 코리아 소사이어티-전미외교정책협의회(NCAFP) 공동주최 토론회에도 참석하겠다는 리 국장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지만 그 기저에는 북.미 실무접촉의 길을 트려는 미 행정부의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는 게 관측통들의 분석이다.

이런 맥락에서 외교가에서는 리 국장이 뉴욕에서 미국 당국자와 회동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 소식통은 "뉴욕은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가 있는 곳으로 북.미간 물밑채널이 가동되고 있다"며 "실무접촉을 하기에 적절한 곳"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리 국장의 미국측 카운터파트로는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 성 김 북핵특사가 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처럼 북.미 실무접촉의 성사 가능성이 커지고 있지만 기상도가 그리 맑아 보이지는 않는다.

북.미대화를 바라보는 양측의 시각과 성격규정에 적잖은 '간극'이 드러나고 있어 이번 실무접촉에서 쉽사리 접점을 찾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북한은 북.미대화를 사실상의 '양자협상'으로 만들어 통 큰 담판을 시도하려 하지만 미국은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

북.미대화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확약받는 자리이며 본격적 의미의 협상은 6자회담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각론에 들어가면 양측의 입장차는 더욱 도드라진다.

먼저 북한은 북.미대화의 시기를 가급적 앞당기려 하지만 미국은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성급히 대화에 응했다가는 북한의 협상전술에 이용당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의제를 놓고는 북한 인권과 일본 납치자 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될 개연성이 농후하다.

미국은 특히 보즈워스 방북팀의 배석단에 로버트 킹 북한인권대사를 참여시키려는 아이디어를 내비치고 있지만 북한이 이를 순순히 수용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대화 방식에 대한 입장도 조율이 필요한 대목이다.

북한으로서는 통 큰 거래가 가능한 '담판' 형식의 단독회담 또는 소인수 회의를 선호할 가능성이 크지만 미국으로서는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확대회의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미간 대화파트너가 누가 되느냐도 미묘한 대목이다.

미국 내에서는 보즈워스 대표가 오바마 대통령의 특사 지위라는 점에서 '비중있는'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적임이라는 견해와 새로운 인물이 나와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북한은 아직 뚜렷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실무접촉은 북.미대화의 구체적 시기와 방식, 의제 등을 조율하는 사전 '룰 미팅'의 성격을 띄면서도 양측이 본격 대화에 앞서 서로 유리한 협상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탐색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기자 rh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