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총리가 9일 한국과 중국 방문 길에 오르면서 그의 한국, 동아시아 중시 행보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는 지난달 취임 이전부터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아시아 외교의 축으로 제시해 왔다.

이는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대한 대안으로도 해석되면서 미국 언론 등의 반발을 불러왔다.

그러나 그는 지난달 유엔총회 등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만났을 때에도 이에 대해 해명을 하지 않았다.

대신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는 "중·일 간의 차이점을 인식하면서, 차이점을 넘어선 신뢰를 구축하고 싶다"며 이 구상을 설명했다.

그만큼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하토야마 총리의 생각은 확고하다.

이런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의 핵심은 한국과 중국이다.

하토야마 총리가 취임 후 첫 아시아 방문지로 한국을 택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일 정상회담 주목 = 하토야마 총리는 부인인 미유키(幸) 여사가 한류 팬인데다 역사에 대한 직시,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반대 등의 입장 표명으로 한국과의 우호적인 분위기를 마련하는데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방한 중 이명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양국 간 현안을 두루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하토야마 총리와 이 대통령은 올바른 역사 인식을 토대로 양국이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 가자는데 의견을 모을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에 얽매여서는 한일 관계의 발전을 이끌어 내기가 어렵다는 생각의 연장선상이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정상회담에서는 재일 한국인 등 영주 외국인에 대한 지방 참정권 부여 문제, 그리고 현재 중단된 상태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재개, 북핵문제 등이 주로 거론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물론, 북핵문제의 경우는 양국, 그리고 10일 정상회담을 하는 중국과도 연대해 대응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방참정권 문제 등의 현안은 결론 도출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 정권은 공식적으로는 지방참정권 조기 부여를 추진한다는 방침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소속 의원 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당내 의원들의 성향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다.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간사장은 지난달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한일의원연맹 한국측 회장을 만났을 때 "내년 정기국회까지 어떻게든 결론을 내겠다"라면서 긍정적인 입장을 전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이 하토야마 총리의 선택이지만, 그는 지금까지는 당의 기본 방침을 재확인하면서도 "당내에 여러가지 의견이 있으므로 논의해 나가겠다"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한때, 여권 내에서 조기 한국 방문에 신중론을 제기한 것도 이런 쟁점들에 대한 해법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어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어떤 형태로 논의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아울러 역사 문제나 교과서 문제 등 양국 간 최대 현안들이 정상회담에서 어떤 식으로 다뤄질지도 관심사다.

이와 관련해서는 하토야마 총리가 취임 전 권철현 주일대사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과거 역사를 직시하겠다'고 밝혔던 점이 주목된다.

당시 하토야마 총리는 "한일 관계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우애 정신하에서 한일관계를 양국 간 관계뿐 아니라 다자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도 밝혔었다.

다만, 취임 이전부터 하토야마 총리에 대한 기대 수준이 한국 내에서 높아진 것이 부담이다.

하토야마 총리로서는 한국과의 우호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할 카드를 제시하고 싶지만, 일본 내 여론이 상당한 부담이기 때문이다.

오는 25일 참의원 보궐선거와 내년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그의 발언이나 합의 내용에 따라서는 야당인 자민당과 우익 세력들의 집중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외상이 7일 도쿄에서 가진 강연에서 아시아 공통 교과서 구상을 밝히면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 답습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 주목된다.

하토야마 총리가 한국 방문 중에 유사한 언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 = 이번 한국과 중국 방문 기간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이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가 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와 관련, 오카다 외상은 7일 "일본, 중국, 한국,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을 범위로 상정하고 있다"고 밝힌 점이 눈길을 끈다.

하토야마 총리가 지난 16일 취임 기자회견에서는 "미국을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미국을 제외하고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 앞서 아시아·태평양 공동체 구상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미국을 배려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던 것과는 다른 맥락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일 정상회담 및 10일의 한·중·일 정상회담에서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폭넓은 의견 교환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들 문제에 대한 3국의 입장이 총론에서는 상당 부분 일치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서 이견도 적지 않아 한두 번 회담으로 구체적인 결론을 도출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하토야마 총리는 이 구상의 핵심으로 공통 통화를 제기했지만, 오카다 외상조차도 "통화 통합을 하게 되면 국가의 주권이 상당히 제한받는다.

사회주의 국가도 있고 민주주의 국가도 있으므로 좀 어렵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또 중국의 경우 일단은 협의 테이블에는 앉고 있지만, 속내는 복잡한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과거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가 동아시아 공동체론을 제기했을 때 "미일이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려 하는 것"이라면서 경계감을 늦추지 않았었다.

이와 관련, 아사히(朝日)신문은 8일 "일본의 정권 교체, 그리고 미국을 포함하지 않은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으로 내용은 바뀌었지만, 공산당 체제인 중국은 아직도 '자유무역지대 구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한·중·일 정상회담에서는 북한문제, 기후변화 등의 과제에 대해 협의한 뒤 '지속 가능한 개발에 관한 공동성명', '한·중·일 협력 10주년 기념 공동성명' 등 2개 문서를 발표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아사히는 덧붙였다.

(도쿄연합뉴스) 최이락 특파원 choina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