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충분한 시장 조사나 은행과의 협의 없이 부적절한 시기에 역(逆)전세대출 보증제도를 시행해 제도가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 국회에서 잇따라 제기됐다.

8일 국회 예산정책처는 정무위원회 신학용 의원(민주당)의 의뢰로 만든 '역전세대출 보증제도 현황 및 검토사항' 보고서에서 "7월 현재 역전세대출 보증제도의 실적은 지난 3월에 비해 약 10분의 1수준으로 감소했다"며 "이는 3월 이후 꾸준한 전세가격의 상승으로 임대인이 전세금 반환을 위한 대출을 받을 필요성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역전세대출은 전세가격이 떨어져 임대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임대인(집주인)에게 대출해주는 상품이다.

역전세대출 보증 건수는 제도를 도입한 2월 126건, 3월 371건으로 증가 추세를 보였으나, 5월부터 급감하기 시작해 7월 현재 40건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보증액은 7월 현재 8억원으로 3월의 91억원에 비해 11분의 1에도 못 미치고 있다.

예산정책처는 "제도 시행 월인 2월에는 이미 전세가격이 상승하는 시기였던 반면, 전세가격 하락률이 가장 높은 작년 12월에는 제도의 필요성이 높았지만 시행되지 않아 적시성 있는 대책이 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역전세대출제도의 문제점 및 개선방향' 보고서에서 "역전세대출 보증제도는 이미 전세가격이 바닥이었던 시기에 시행돼 실효성이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집행기관인 은행들과 사전에 충분한 협의를 하지 않은 점과 과거에 문제가 되었던 정책을 반복한 점도 도마에 올랐다.

예산정책처는 "정부는 2월 6일부터 제도를 시행한다고 공표했지만, 은행의 상품개발과 전산시스템 구축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여서 대출이 이뤄지기까지 최대 한 달 이상의 준비기간이 소요됐다"며 "정부가 무리하게 제도의 시행을 공표해 임대인들이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을 방문했을 때 혼선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과 기업은행은 제도 시행 1주일 후인 2월 13일 역전세대출보증 상품을 출시했지만, 농협은 3월 3일 출시했고 최대은행인 국민은행은 한 달이 지난 3월17일에야 상품을 판매했다.

입법조사처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옛 건설교통부가 국민주택기금에서 3천억원을 조달해 임대보증금 반환자금 대출을 시행했지만, 시행 6개월 만에 전세가격이 상승해 제도의 실효성이 크게 반감된 사례가 있었다"며 "실패한 정책의 반복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고 설명했다.

신 의원은 "역전세대출 상품은 현재 은행권에서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했다"며 "시장 상황이 급변한 것도 문제지만 더 큰 책임은 시장을 읽지 못한 채 전시 행정을 강행한 금융위원회에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역전세대출 보증제도는 연초 전세 임대금을 못 주는 현상이 사회 문제가 되면서 안전장치를 만들기 위해 2월에 주택금융공사법 시행령을 고쳐 급하게 도입한 제도"라며 "올 들어 금융위기가 빠르게 해소되면서 집값이 급반등해 신청자가 줄어든 것으로 전시 행정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최현석 기자 harris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