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바겐' 제안 본격 추진 전망..北태도 관건

이명박 대통령이 30일 `G20정상회의 유치 보고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북핵 문제에 대한 '주도적 역할'을 해나가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천명했다.

글로벌 경제질서를 주도하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개최하게 됨으로써 한층 높아진 국격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확보하는 동시에 현실적으로 '우리의 문제'인 북핵 문제를 주도해보겠다는 각오를 다진 셈이다.

특히 미국 방문 중에 북한의 핵포기와 이에 상응하는 안보.경제조치를 일괄적으로 타결짓자는 것을 골자로 하는 '그랜드 바겐' 방안을 내놓은 만큼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의 안'을 확산시켜나갈 뜻도 다진 것으로 평가된다.

이 대통령이 "남북문제는 우리가 당사자 아니냐"면서 "우리가 좋은 안이 있다면 6자회담국을 설득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힌다.

이 대통령이 '우리의 좋은 안'이라고 그랜드 바겐을 규정한 것은 지난 핵협상 과정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함께 북한을 실질적으로 비핵화의 길로 유도하기 위한 '새로운 규칙'이 제안의 취지에 담겨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05년 6자회담의 최대 성과물로 평가되는 9.19 공동성명이 한반도 비핵화의 지향점을 규정하고 있음에도 신속한 이행을 위한 실천 로드맵이 부족한 점을 감안, 이를 극복하는 내용이 그랜드 바겐에 담길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이 대통령이 "북핵 문제가 미국, 중국, 세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우리가) 남북문제 당사자인데 우리의 목소리가 없었다.

미국, 중국 안을 따라가기만 했다"고 지적한 것은 지난 북핵 협상과정에서 북한의 의도대로 비핵화 실현이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한국은 무기력했다고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한국 정부가 '앞으로는 과거처럼 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정부 소식통은 "그동안 한국은 북핵문제의 최대 당사자이면서도 현실적 힘의 질서 속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는데 한계가 있었지만 앞으로는 한국이 주변국들과 긴밀히 협조하면서 판을 주도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는 그랜드 바겐을 제안하기까지 미국은 물론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 6자회담 관련국들과 실질적인 내용 협의는 물론 향후 추가 협의 일정까지 긴밀하게 조율해왔다는 것이 정부 당국자들의 전언이다.

이 대통령도 "오바마 대통령과도 정상회담에서 얘기했다.

러시아 대통령에게도 사전양해를 구했고 중국에도 사전양해를 구했다.

일본은 물론이다"라고 소개했다.

방미 기간에 미국측 인사의 발언으로 인해 일각에서 제기됐던 그랜드 바겐과 관련한 논란을 일축한 것이다.

이와 관련, 방한 중인 제임스 스타인버그 부장관은 이날 권종락 외교부 제1차관과의 회담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미국의 포괄적 접근(comprehensive approach)과 한국의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이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간 한.미가 협의해 온 사안으로, 포괄적이고 결정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그랜드 바겐의 취지를 충분히 이해할 경우 '북한이 원하는 것을 내놓고 타결하자는' "그랜드 바겐이라는 용어 자체에 북한도 거부반응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전향적인 반응을 기대하고 있으며, 북한의 태도에 따라 비핵화 문제와 남북관계가 함께 신속하게 진전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제 문제는 이 대통령이 제안하고 국제사회가 인식하기 시작한 '그랜드 바겐'이라는 제안을 실제 현실에 접목하는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기본적인 취지에 큰 줄거리만 성안이 된 단계인 만큼 앞으로 관련국과의 협의를 통해 구체적인 내용을 채우고 논리를 보강해 실제 협상에서 통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방안으로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미국도 '포괄적 패키지'라는 일괄타결 방안을 제시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한.미 양국간 긴밀한 '공통분모 찾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그랜드 바겐'이 실현되려면 북한의 호응이 전제돼야 하는 만큼 진정성을 갖고 북한을 설득하고 동참을 유도하는 호소력있는 후속조치가 필수적이라는 얘기도 있다.

이와 함께 초당적인 뒷받침을 받으려면 과거 정부와의 지나친 차별화에 집착하기 보다는 '반대세력'과도 머리를 맞대는 진정성이 요구된다는 고언이 많다.

외교소식통은 "그랜드 바겐이 이뤄지려면 이를 실행해나갈 논리와 철학을 겸비한 그랜드 디자인이 전제돼야 한다"면서 "외교 현장에서는 성급하고 조급한 행위가 좋은 취지와 목표를 흔들 수 있는 만큼 핵심 당국자들의 신중한 처신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우탁 기자 lw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