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비료 등 대규모지원, 북핵상황과 연계될듯

북한 조선적십자회 장재언 위원장이 지난달 26일 유종하 대한적십자사 총재에게 남측이 `이산가족 상봉에 상응하는 모종의 호의'를 보여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부 차원의 대북 인도적 지원이 이뤄질지 관심을 모은다.

장 위원장이 거론한 `호의'는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매년 수십만t 규모로 제공했다가 지난 해 현 정부 출범 이후 중단된 정부 차원의 쌀.비료 직접 지원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북한 입장에서 가을걷이를 바로 앞두고 식량 사정이 어려운 지금 전례대로 인도적 지원 분야에서 남측이 모종의 성의를 표시하라는 요청을 우회적으로 한 것이란 분석이었다.

이에 대한 정부 입장과 관련,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28일 오전 국회 정보위 전체회의에서 "이번에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인도적 조치가 있었으므로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혀 분분한 해석을 낳았다.

그러나 민간 인도주의 지원단체나 국제기구에 백억대 안팎의 남북협력기금을 지원하는 식의 간접 지원은 한반도 정세가 급격히 악화하지 않는 한 성사될 가능성이 있지만 수천억원이 투입되는 쌀.비료 지원은 북핵 상황이 호전되고 남북 당국간 대화가 본격화되어야 가능할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실제로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은 28일 북한의 영유아, 취약계층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계속되고 있음을 상기하면서 "현재 단계에서 북한에 대한 대규모 식량지원이나 비료지원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그간 정치적 상황에 관계없이 인도적 대북지원을 한다는 원칙을 누차 천명했지만 수천억원이 소요되는 수십만t의 쌀.비료 지원은 `순수 인도적 지원'의 명분만으로 보낼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서는 수준이라는 인식을 읽을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즉 쌀.비료 등의 지원이 인도주의적 성격을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의 제2차 핵실험 이후 대북 제재국면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대규모 지원은 결국 핵을 가진 채 체제생존을 모색하려는 평양의 전략을 포기시키는데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북핵문제에 진전이 이뤄지고 그에 바탕해 남북 당국간 대화가 본격화할 때 남북관계 전반에 대한 새로운 판짜기를 하면서 쌀.비료 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북핵 상황이 진전되고 남북대화 과정에서 북한의 지원요청이 있더라도 그것이 지원 성사로 직결될 것으로 예단하긴 어렵다.

대북지원물품의 분배 모니터링 측면에서 세계식량계획(WFP) 같은 국제기구 수준에 부합해야 한다는 요구 역시 충족시켜야 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