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정호냐?" "아이고, 형님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실종된 형을 찾기 위해 입대 12년간 군생활을 한 동생 이정호(76)씨와 북측에 국군포로가 된 형 이쾌석(79)씨가 26일 오후 열린 추석 이산가족 상봉에서 꿈에 그리던 상봉을 했다.

장남인 쾌석씨가 1950년 가족들과 아침밥을 먹고 집을 나섰다가 징집돼 전쟁터로 나가 실종된 지 59년만이다.

쾌석씨는 전쟁터에 나가게 됐다는 소식을 부모님에게 전하기 위해 입대 직후 집을 다시 찾았지만 그게 가족들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가족들은 그로부터 10년 뒤인 1960년 쾌석씨의 전사통지서를 받았다. 죽은 줄로 알았던 큰 형이 북한에 살아있다는 소식을 동생 정호씨가 정부로부터 전해들은 것은 불과 3개월 전인 올해 6월이다.

형제애가 남달랐던 정호씨는 전쟁터에서 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1952년에 자원입대해 형의 전사통지서를 받을 때까지 12년간 군생활을 했다.

정호씨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민간인 신분보다는 군인 신분을 유지하는 것이 형 소식을 수소문하는 데 좋다고 판단, 복무기간을 계속 늘려가며 1963년까지 군에 있었다.

13년 전 돌아가신 이들 형제의 어머니 역시 쾌석씨의 전사통지서가 올 때까지 큰아들이 살아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전국의 점집을 돌아다니며 생사 여부를 물어봤다고 한다.

정호씨는 가슴에 대못이 박힌 채 평생 큰아들을 그리워하다 형의 생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돌아가신 어머니만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진다고 했다.

쾌석씨는 동생을 만난 반가움과 장남으로서 부모님의 임종조차 못한 미안함에 정호씨의 손을 꼭 부여잡고 상봉 내내 놓지 않았다.

그는 특히 동생 정호씨가 고향에 선산을 구입해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셨다는 말을 듣고 "잘했다. 나는 너한테도 죄를 짓고 부모님한테도 죄를 지은거지"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쾌석씨는 "나는 어머니를 항시도 잊지 않았다"며 "이제 너를 만나 너무 기쁘니 눈물도 나지 않는다. 나도 솔직히 부모 친척, 형제도 없이 나 혼자 이곳에 와서.."라며 그동안의 일이 떠오른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정호씨는 형에게 어떻게 북한에까지 가게 됐는지를 물었지만 쾌석씨는 "징집돼 군대에 갔다가 이곳에 왔다.

그래도 이곳에 와서 대학도 가고 결혼도 하고 아픈 곳이 없이 잘 살고 있다"며 동생을 안심시켰다.

정호씨와 함께 이산가족 상봉에 참여한 넷째 동생 이정수(69)씨는 쾌석씨가 데려나온 그의 딸 경숙(49)씨와 아들 경주(43)씨에게 남쪽에 있는 가족들의 가계도를 직접 그려보이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포함, 가족 모두를 소개했다.

정수씨는 쾌석씨에게 "형님 군대갈 때 내가 3살이었는데, 나 기억나요? 형님 정말 보고 싶었어요"라며 쾌석씨를 안았다.

(금강산=공동취재단) 김승욱 기자 = ksw0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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