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계기로 26일부터 1년11개월만에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린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역사는 그리 깊지 않다.

남북한 당국 차원에서 추진.성사된 상봉은 1985년 9월20~23일 이산가족 고향 방문단 교환사업이 처음이었다.

그해 5월 열린 제8차 적십자 본회담 합의에 따라 이산가족고향방문단 총 65가족(남측 35가족.북측 30가족)이 서울과 평양을 상호 방문했다.

남북은 1971년부터 시작된 적십자회담 테이블에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지속적으로 올렸지만 양측이 체제 경쟁에 여념이 없던 그 당시 이산가족을 찾는 방법 등을 놓고 소모적 신경전을 벌인 끝에 1985년에서야 첫 상봉행사가 성사됐던 것이다.

이후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인 6.15 남북공동선언 제3항에 "인도적 문제의 조속한 해결"과 8.15를 계기로 한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이 포함된 이후 현재까지 총 16차례의 대면상봉 행사와 7차례의 화상상봉이 이뤄졌다.

대면 상봉을 통해 남측 1만673명(1천683가족), 북측 5천539명(1천695가족) 등 총 1만6천212명(3천378가족)이 재회의 기쁨을 누렸고 남측 2천257명(279가족), 북측 1천491명(278가족) 등 총 3천748명(557가족)이 화상상봉을 했다.

또 민간 차원에서 상봉을 추진, 제3국에서 만난 사례가 1990년 6건을 시작으로 올해 8월 말까지 총 1천684건에 달하며 북에서 만난 사례도 1998년 1건을 시작으로 8월 말까지 총 34건에 이른다.

그러나 이런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이산가족의 만남은 196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쿄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일본을 찾은 북한의 육상영웅 신금단씨가 딸을 보려고 서울에서 날아온 부친 신문준씨와 재회한 것을 최초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1951년 함경남도 이원에서 아버지와 헤어진 신씨는 도쿄 올림픽 중장거리 부문의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음에도 소련과 비동맹 국가들을 중심으로 열린 `신흥국 경기대회(가네포)'에 출전했던 경력이 문제가 돼 출전자격을 박탈당한 뒤 귀국을 위해 니가타행 열차를 타기 직전 아버지를 약 7분간 만났다.

한편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으로 이산가족 정보통합센터에 등록된 이산가족 찾기 신청자 수는 12만7천547명이며 이 중 4만7천195명이 이미 사망했다.

생존 이산가족 중에는 90세 이상이 4.5%(3천911명), 80대가 32.7%(2만8천207명), 70대가 38.5%(3만3천235명)로, 70대 이상의 고령자가 75%를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