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왜 국무총리로 내정했을까. 얼핏보면 '코드'가 달라 궁금점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정 내정자가 감세정책,기업규제완화 등 현 정부의 굵직굵직한 정책방향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 탓이다.

그래서 세종시 문제 해결,사회통합,차기 대권구도 등 여러가지 정치적 배경이 거론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두 사람의 '코드'가 일치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실용'이 공통분모다.

2007년 8월 출판된 정 내정자의 저서 '가슴으로 생각하라'를 보면 정 내정자는 우파도 좌파도 아닌 실용주의에 가깝다는 점을 읽을 수 있다. 정 내정자는 책 서문에서 2007년 대선 후보 출마 여부를 고뇌하면서 "나 역시 급변하는 국내외 상황을 지켜보며 실용적 리더십을 바탕으로 국가운영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우리나라가 제2의 도약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차였다"고 회고했다. 이는 이 대통령이 지난 8 · 15 경축사에서 "중도실용은 국가발전이 국민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위민(爲民)의 국정 철학"이라며 중도실용을 강조한 것과 그대로 맥이 닿아 있다.

총리의 직접적인 권한은 아니지만 외교문제에 대해서도 정 내정자는 실용노선을 강조한다. 정 내정자는 2003년 초 당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자주외교'한다고 하는데 그건 옳은 방향이 아니다. 어느 누가 자주를 싫어하겠는가. 그러나 자존보다 생존이 더 중요하다. 실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도 속으로 경계하는 것은 좋지만 글로벌 마인드를 가지고 실용외교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내정은 개혁드라이브를 강화하고 외교는 보수적으로 실용노선을 추구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도 했다. 그러나 "진지한 대화가 오갔지만 얼마 되지 않아 내 말이 메아리도 없이 허공에 흩어지고 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 같은 정 내정자의 외교관(觀)은 미국과의 공조 아래 일관된 대북정책을 밀고 나가는 MB의 실용외교와 닮은 꼴이라고 할 수 있다.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한 '대학등록금 취업 후 상환제' 등 친서민 정책을 강조하고 있는 이 대통령의 행보 역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해온 정 내정자의 코드와 일치한다. 정 내정자는 서울대 총장 시절 지역균형 선발제도와 관련해 "내가 지향한 개혁의 초점은 두 가지"였다며 하나는 서울대의 다양성 제고이며 다른 하나는 가난한 학생 · 지방출신 학생들도 부잣집 · 도심 학생들과 동일한 선상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정 내정자는 지난 4일 기자들과 만나 "이 대통령과 나는 서민 가정에서 자라난 성장 배경도 같고 서민에 대한 이해가 높다"면서 "서민에 대한 배려는 우리들 콤비만큼 잘 되는 게 없다. 경쟁은 존중하고 약자는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도 같다"고 말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