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3년 8월 8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발생한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 사건에 일본의 육상자위대 대원 출신들로 구성된 조사회사가 관여했다고 산케이(産經)신문이 27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납치를 실행한 당시 중앙정보부가 김 전 대통령의 일본 내 거주지를 확인하기가 어렵자 도쿄에 근거를 둔 조사회사인 '밀리언 자료 리서치'라는 회사에 이를 의뢰했다.

당시 이 회사에 근무하던 쓰보야마(75) 대표는 산케이와의 인터뷰에서 자위대의 정보 분야에서 일하던중 1970년부터 북한 국내 상황과 군사 정보 파악 업무를 담당하게 되면서 평소 알고 지내던 신문기자를 통해 북한 정보에 정통한 전문가라면서 당시 주일 한국대사관의 김동운 1등 서기관을 소개받았다고 말했다.

쓰보야마씨는 당시부터 김 서기관과 정보를 주고 받으면서 친분을 쌓아왔다.

쓰보야마씨는 1973년 자위대를 그만둔 뒤 이 조사회사로 옮겼고, 회사측이 중앙정보부의 요청을 수락하면서 김 전 대통령의 소재지 파악을 위한 팀장 역할을 했다.

김 서기관은 1973년 여름 쓰보야마씨에게 김 전 대통령의 주소확인, 활동자금원 조사, 일본내에서의 지원조직 동향 파악 등을 요청했다.

당시 김 서기관은 "김대중씨의 고려연방제 구상에 근거한 활동을 멈추게 하고 싶다.

김대중씨에게 영향력이 있는 김경인, 양일동씨와 대면시켜 설득하기 위해 주소를 파악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쓰보야마씨는 자금원과 지원조직 동향에 대해서는 일본 공안 당국을 통해 파악할 수 있었지만 소재 확인 작업에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김대중씨의 국내 지원 조직이 재일한국인청년 등을 중심으로 하는 경호부대를 편성한데다, 중앙정보부에 역정보를 흘렸기 때문"이라고 쓰보야마씨는 말했다.

그는 "중앙정보부가 알려준 주소 정보를 확인했지만, 중앙정보부가 교란 정보에 휘둘렸다"고 말했다.

납치사건 발생 열흘 전인 1973년 7월 29일 김 서기관은 쓰보누마씨에게 신문기자를 동원해 인터뷰를 하는 방식으로 소재지를 확인해 달라고 제안했다.

이런 방안은 성공, 같은 해 8월 2일 도쿄 긴자(銀座)의 다이이치(第一)호텔에서 회견이 이뤄졌다.

중앙정보부가 김 전 대통령의 소재 파악에 성공한 것이었다.

쓰보야마씨는 다음 날 요금 청구를 위해 김 서기관과 만났다.

당시 김 서기관은 "김대중씨가 8월 9일 자민당 아시아·아프리카연구회에서 연설할 계획이다.

이것이 실현되면 김대중씨의 활동, 존재가 일본에서 공인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날 납치 사건이 일어났고 같은 달 중순 쓰보야마씨 집으로 홍콩에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자신을 사토라고 소개한 사람은 쓰보야마씨의 부인이 남편이 부재중임을 알리자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쓰보야마씨는 "입단속을 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토는 김 서기관이 일본에서 사용한 이름이다.

일본 경찰은 이런 내용에 대해 수사를 했지만 "납치 계획을 알면서 가담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신문은 전했다.

(도쿄연합뉴스) 최이락 특파원 choina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