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이 독일식의 급격한 통일을 이룰 경우 남한의 재정 부담이 충격적인 수준에 달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당장 2011년에 통일이 된다고 가정하면 10년여간 매년 남한 국내총생산(GDP)의 12%가량(2008년 GDP 기준 122조원)에 해당하는 추가 재정을 통일비용으로 투입해야 할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조세연구원은 27일 펴낸 '남 · 북한 경제 통합이 재정에 미치는 영향'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이 같은 분석 결과를 내놨다.

조세연구원은 먼저 지금 당장 남북 통일로 경제 통합이 이뤄질 경우 재정에 미치는 충격이 20년 전인 1990년에 비해 훨씬 클 것으로 점쳤다. 1990년대 초반 6~8배였던 남 · 북한의 소득 격차가 2007년 17배로 확대된 만큼 남한이 이를 해소하려면 막대한 재정 지출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더불어 통일에 따른 경제 통합으로 남측의 각종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북한 지역으로 확대 적용되는 상황을 가정한다면 여기에 추가로 투입되는 재정 지출 규모만 북한 GDP의 300%,통일한국 GDP의 8%를 초과할 것으로 내다봤다. 북한의 GDP가 남한의 18분의 1 수준(약 57조원)이란 점을 감안하면 171조원이 기초생활보장 등 사회안전망 구축에 들어간다는 얘기다.

조세연구원은 20년 뒤에 경제 통합이 이뤄진다고 해도 재정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준욱 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향후 20년간 중국식 경제개혁을 통해 연평균 8~9%의 소득증가율을 유지할 경우 남 · 북한의 소득 격차가 상당히 줄어들겠지만 같은 기간 남한의 소득증가율이 4~5%를 유지한다고 가정하면 20년 뒤에도 소득 격차는 10배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20년 뒤 북한 인구는 꾸준히 늘어나는 반면 남한은 출산율이 계속 낮아져 남한 인구 1인당 추가 재정 부담이 더 커질 우려도 있다"며 "사실상 어느 시점에서든 통일에 따른 급격한 경제 통합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조세연구원은 남북이 경제 통합을 이루되 사회보장제도와 조세제도를 일정 기간 따로 운영할 경우의 재정 부담에 대한 분석 결과도 내놨다. 2011년에 통일과 경제 통합을 이루고 사회보장제도를 북한지역에는 적용하지 않는 가운데 북한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성장을 이루는 상황을 가정했다. 조세연구원은 이 경우 추가 재정 지출 부담은 경제 통합 초기 남한 GDP의 12%대에서 10년 뒤 7%로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남한의 GDP(1023조원)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122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이 투입돼야 한다는 얘기다.

최 연구위원은 "북한 경제의 성장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막대한 재정 지출 부담을 떠안으면서 경제 통합을 이루기 위해선 통일 이후 60년간 조세부담률을 2%포인트 높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해결책은 이른 시일 내에 남북 간 소득 격차를 최대한 줄이는 것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