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은 국회 영결식이 끝난 23일 오후 3시10분께 국회를 출발,동교동 사저와 광화문 사거리,서울광장,서울역을 거쳐 오후 5시께 김 전 대통령의 묘지가 있는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도착했다. 운구행렬이 지나간 20.5㎞의 인도에 몰려든 시민들은 고인을 향해 "안녕히 가세요"라며 마지막 작별인사를 고했다.

동교동 사저를 거쳐 광화문 사거리를 지난 운구 행렬은 오후 4시25분께 서울광장 앞에서 잠시 멈춰 서 이곳에 운집한 수많은 시민과 만났다. 차가 멈춰 서자 이희호 여사는 차에서 내려 감사의 인사와 함께 남편 김대중의 유지를 메모 형식으로 읽어내려 갔다.

이 여사는 "제 남편이 병원에 입원하고 국장 기간 내내 여러분들이 넘치는 사랑을 베풀어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제 남편은 일생을 통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피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며 "많은 오해를 받으면서도 오로지 인권과 남북의 화해,협력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권력의 회유와 압력도 있었으나 한번도 굴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회고했다. 또 "제가 살아오면서 남편이 평생 추구해온 화해와 용서의 정신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고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의 양심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며 "이것이 남편의 유지"라고 밝혔다.

이 여사의 감사인사가 끝나고 운구 행렬이 출발하는 순간 노란 풍선과 전남 함평에서 가져온 나비 518마리(5.18 민주화 운동 상징)가 하늘로 날아올라 추모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날 3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에도 불구하고 서울을 비롯한 전국 184곳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이른 아침부터 김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시민들은 영결식을 앞두고 광장 주변에 설치된 플래카드에 근조 리본을 달거나 추모의 뜻이 담긴 메모지를 붙였다. 서울 양평동에서 온 김현석씨는 "김 전 대통령은 한국 현대사의 거목이셨다"며 "김 대통령님 안녕히 가세요"라며 운구 행렬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온 장지혜씨(24 · 여 · 대학생)는 "마지막 가시는 길 보러 왔다. 원래부터 존경했다. 온갖 수난을 겪고 다 이겨내시고 살해 위협을 받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으셨다"며 고인을 기렸다.

전국 곳곳에 마련된 분향소에도 고인을 추모하려는 막바지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광주 옛 전남도청에 마련된 광주시민 합동분향소에는 어린이의 손을 잡고 나온 가족단위의 조문객들이 많았다. 김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는 전날 밤 열린 진도 씻김굿을 보고 하룻 밤을 묵거나 첫 배를 타고 섬에 들어온 외지인들이 신안면 사무소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생가를 둘러봤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설치된 분향소에도 이른 아침부터 전국에서 관광버스 등을 타고 온 가족단위의 조문객들이 길게 줄을 지어 김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었다. 전국의 관공서를 비롯한 주요 기관은 국장 마지막 날까지 조기를 다는 한편 대규모 행사를 자제하면서 추모 분위기를 이어갔다.

행정안전부는 국장기간동안 전국 182개 분향소(시도 22개소,시군구 160개소)에서 모두 70여만명이 조문한 것으로 집계했다. 영결식이 끝난 후에도 일부 분양소는 계속 조문객을 받았다. 국회 정문 앞으로 장소를 옮겨 설치된 국회 분향소는 오후 4시까지,서울광장 분향소는 자정까지 조문객을 맞았다.

김 전 대통령 광주 · 전남 추모위원회는 이날 저녁 옛 도청 앞 광장에서 추모문화제를 열었으며 삼우제(三虞祭)기간인 25일까지 분향소에서 계속 조문객을 받기로 했다.

이해성/이재철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