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

영면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전에 남긴 마지막 일기에서 자신의 삶을 이렇게 적었다. 정말 부러운 얘기다. 생을 정리하면서 이런 평가를 내릴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숱한 아쉬움과 후회가 남는 게 솔직한 우리 인생 아닌가.

"여러가지 남다른 성공을 했다"고 스스로 썼듯이 그의 인생은 성공작이었다. 국회의원 6선을 했고 10여년 야당총재에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랐다는 이유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엄청난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인동초로서의 치열한 삶 때문일 것이다. 그의 정치역정은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한 한 편의 드라마였다.

그는 천의 얼굴을 가진 한국정치의 거목이었다. 민주투사였고 남북관계의 기본틀을 바꾼 선구자였으며 외환위기를 극복한 준비된 구원투수였다. 그는 일찌감치 반독재 투쟁의 선봉에 섰다. 납치와 사형선고,1087일의 망명,71개월의 투옥,가택연금이 이어진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은 부끄러운 기록이 아니라 영광의 상처였다.

그는 냉전적 남북관계를 교류와 협력의 단계로 한 차원 업그레이드시켰다. 퍼주기 논란 속에서도 그는 햇볕정책으로 통칭되는 대북 포용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분단 55년 만에 이뤄진 남북정상회담과 노벨평화상은 그 결과물이었다.

97년 외환위기 극복도 우리 뇌리에 각인돼 있다. 외환보유고가 39억달러로 사실상 나라 곳간이 빈 상태에서 정권을 넘겨받은 김 전 대통령은 과감한 구조개혁을 통해 위기를 조기에 극복했다. 재임 마지막 해 외환보유고를 1214억달러로 늘렸다.

대한민국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고 떠나면서 김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의 극복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던졌다. 지역주의는 김 전 대통령(DJ)과 김영삼 전 대통령(YS),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총재(JP)가 주인공이었던 3김시대의 유산이다. 영남(YS)과 호남(DJ) 충청(JP)을 뿌리로한 지역분할정치는 지역주의를 고착화했다. 이제 DJ는 영면했고 YS는 텃밭이었던 영남에서조차 영향력을 잃어버진 지 오래다. JP는 문상을 못할 정도로 몸이 쇠약해진 상태다. 이처럼 3김은 정치에서 퇴장했지만 유산인 지역주의는 여전하다. 아니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나라당은 14대 이후 호남에서 단 한 석의 금배지도 배출하지 못했다. 민주당은 아예 대구 경북에서 의원을 배출한 기억조차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8 · 15 경축사에서 고질적인 지역감정을 해소하고 생산적인 정치문화를 위한 대안으로 선거제도와 행정구역 개편을 들고 나온 것도 이런 맥락이다. 1개 선거구에서 1명만을 뽑는 현행 소선거구제를 영남에서 민주당 의원,또 호남에서 한나라당 의원이 배출될 수 있도록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자는 게 요지다. 또 100년 전의 행정 구역도 개편해 효율적인 지역발전을 통해 지역주의를 극복하자는 것이다.

말처럼 쉽지 않다. 당장 기득권을 지키려는 일부 정치인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다. 이를 극복하지 않고선 정치발전이 불가능하다. 정치는 4류라는 비판도 면키 어렵다. 3김시대가 막을 내린 마당에 부정적 유산인 지역주의를 극복해달라는 게 DJ가 정치권에 던진 마지막 메시지다.

이재창 정치부장 leejc@hankty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