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종언(終焉)’ - 장석주 시인



동해의 어린 파도들이 젖을 빠는 동안

구름은 남쪽으로 이동 중이었다.

여름 불꽃이 직립한 것들에게 그림자를 나눠주고

그늘 아래 오후의 홍차를 즐기던 사람들이

잠시 이마에 손을 얹는 그 순간,

님은 병상에서 이승의 숨결을 껐다 한다.

우리는 구국(救國)의 등불을 잃고

별들은 후두두 자두열매처럼 떨어진다.

오늘 우리는 캄캄한 어둠 속의 상심한 애인들,

오오,애통하다,

함께 울자,동해의 어린 파도들아!

백두대간의 크고 작은 산들아!

백주(白晝)에도 사람들이 사라지고

꽃들 파랗게 질려 울음도 울지 못하고

언 항아리들 터져 검은 간장들이 쏟아질 때

피랍과 연금,투옥과 망명,

사형선고를 받고도 고요하던 그 인동초,

얼음과 서리로는 도무지 꺾지 못한 그 인동초!

지금 우리는 마냥 슬퍼할 때가 아니다.

평화와 인권의 꽃을,

민주화의 꽃을,

남북화해의 꽃을 가꾸고 더욱 피워야 할 때!

동서는 어깨동무를 하고

남북은 형제니 더는 싸우지 말고

민주 초석(礎石) 위에 기적의 날들을 세우자!


장석주 시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