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날 이유 충분..`형식' 변수될수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북한 고위급 조문사절단의 21~22일 방한을 계기로 현 정부 출범 이후 첫 남북 고위 당국자간 만남이 성사될지 주목된다.

남북은 작년 2월말 이후 양측 6자회담 수석대표 등 외교 당국자들이 다자회담 틀안에서 만나 양자 협의를 한 적은 있지만 실질적인 고위급 남북대화는 없었기 때문에 만남 성사 여부는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일단 우리 직제로 보자면 장관급 이상인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 비서와 통일부 장관의 카운터파트로 볼 수 있는 대남 실세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으로 구성된 조문단의 면면은 대화의 전제조건인 `급(級)'과 `내용'을 모두 갖췄다는게 중평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 쪽에서 만날 의향이 있다면 좀처럼 잡기 어려울 수 있는 대화의 기회가 온 셈이다.

또 북한은 남북관계의 선결과제이던 억류근로자 유성진씨를 지난 13일 석방한데 이어 20일 작년 12월 남북관계 1단계 차단조치로 시행한 `12.1조치'를 사실상 전면 해제함으로써 `분위기'를 조성했다.

특히 북한이 김양건 부장을 조문단에 포함시키고 일정도 1박2일로 잡은 것은 우리 당국과의 회동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이 적지 않다.

우리 정부 입장에서도 북측 인사들을 만나지 않아야 할 이유와 만나야 할 이유를 비교하자면 후자 쪽에 좀 더 무게가 실릴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최근 북한이 대남 유화조치를 취하는 배경에 대해 여러 해석들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정부가 누차 조건없는 남북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만큼 이런 대화의 기회를 그냥 흘려 버리는 것은 향후 남북관계 운용 측면에서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점에서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언제, 어떠한 수준에서든 남북 간의 모든 문제에 대해 대화와 협력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했던 만큼 어떤 형태로든 이번에 남북고위급간의 만남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만 1년6개월여 첨예한 대립각을 세워온 남북의 고위 당국자가 별다른 준비 및 사전 의제 조율없이 만나는 것은 간단치 않은 문제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특히 만남의 격을 놓고 남북간 `기싸움'이 벌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정부 안팎에서는 우리 측 현인택 통일부 장관과 김양건 통전부장이 만나는 것이 격이나 소관업무 면에서 적절한 그림이라고 보고 있다.

현 장관이 북측 숙소를 방문, 조용하고도 실질적인 대화를 할 수 있으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북측은 과거 정부시절 남북장관급 회담에 통전부의 국장급 인사들을 `내각 참사' 타이틀로 내 보냈던 전례가 있다.

즉, 만약 북측 조문단이 우리 측 인사를 만날 생각이 있다고 가정할 때 그런 과거 관행에 근거, `김양건 부장이 나서면 현 장관 보다 더 고위직 인사가 나와야 한다'고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또한 청와대 예방을 희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일각에서는 보고 있다.

아울러 이번 조문단 방문이 김 전 대통령 서거라는 돌발상황에 따른 것이기에 사전에 남북이 의제 등에 대한 실질적인 사전 조율을 하기가 힘든 상황이었다는 점 때문에 양쪽 모두 또는 한쪽이 만남에 부담을 느낄 것이라는 관측도 없지는 않다.

또한 다수의 예상과 달리 북한이 이번 남한 방문의 목적을 `조문'에만 한정한 채 정부 측 인사는 만나려 하지 않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일각에서는 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