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20일 국회로 돌아왔다. 국회의원(6선)으로선 1996년 14대 국회를 끝으로 여의도를 떠난 지 14년 만의 귀향이다. 국회 본청 앞 계단 위에 설치된 가로 12m · 세로 8m의 제단 앞에선 보수 · 진보, 여야가 따로 없었다. 조문객들 사이에선 DJ가 남긴 숱한 일화가 화제였다.

전직 국회의원 K씨는 "DJ가 국회도서관을 가장 많이 드나든 의원"이라고 했고,다른 노정객은 "6대 국회 개원 후 6개월 동안 본회의에서 가장 많은 발언(13회)을 한 사람이 DJ"라며 국회 상임위 운영을 일문일답 질의형식으로 바꾼 장본인이라고 소개했다.

민주당의 장래를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서경석 목사(기독교사회책임 공동대표)는 "민주당 내에서 DJ의 화합정신을 계승하면서 사회통합과 합리주의의 길을 가는 정치인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투쟁일변 행태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한 정치인은 "DJ가 상생정치의 화두를 던져놓고 귀천(歸天)했다"며 "역시 정치9단"이라고 했다.

DJ의 염원 때문인지, 미약하지만 정치권의 상생 움직임이 엿보인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날 "빈소가 민의의 전당에 마련돼 참으로 다행이다. 이제는 거리 투쟁이 아닌 국회에서 품격있는 대화와 의회정치를 하자"고 제안했다. 민주당도 일단 미디어법 무효를 위한 100일 장외투쟁을 중단했다. 장례식 상주를 자처하며 조심스레 국회 등원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여야는 아직까지 9월 국회 의사일정에 대한 어떤 논의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한나라당은 내달 1일 국회가 개회되는데도 4~5일 의원연찬회를 잡았고 민주당은 강경파의 목소리가 여전히 크다.

DJ가 남긴 숱한 어록 중에서 "정치인은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 사이에 있어야 한다"는 문구가 유독 가슴에 와닿는다. 정치인은 유연한 사고와 균형 잡힌 언행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3김 중 한 사람으로 건강이 좋지않은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JP)는 보좌역을 통해 "세월을 이기지 못하는 것은 그 분이나 나나 똑같다"며 직접 조문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했다.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정치권이 새 시대를 어떻게 열어갈지 국민은 지켜보고 있다.

이준혁 정치부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