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전윤철 전 감사원장은 19일 김대중 전 대통령을 '한(恨)과 질곡을 뛰어넘어 후회 없이 모든 열정을 다 바친 지도자'로 기억했다.

전 전 원장은 이날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어려운 인생을 사셨지만 당신의 정치적 철학에서는 승리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 취임 초기였던 외환위기 때를 먼저 떠올렸다. 전 전 원장은 "당시 점심까지 걸러가며 (경제동향) 보고서를 읽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며 "김 전 대통령이 안으로는 구조조정을,밖으로는 각국을 설득하며 밤낮 노심초사하지 않았다면 국난을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62년 6월 종로 피카디리극장 인근의 지하 다방에서 김 전 대통령이 한 무리의 젊은이들에게 마르부르크학파의 법철학을 역설하는 자리에서 시작됐다. 당시 서울대 법대생이던 전 전 원장은 "다방에 갔다가 옆자리를 보니 DJ가 젊은이들에게 나라의 근간인 법치주의에 대해 강연하고 있었다"며 "몇 시간 동안 얘기하는데 일어서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정도로 뜨겁고 열정적인 자리였다"고 전했다. 전 전 원장은 "그때부터 DJ를 옆에서 지켜볼 운명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전 전 원장은 국민의 정부에서 기획예산처 장관,대통령 비서실장,경제부총리를 지냈다. 전 전 원장은 "DJ는 어딜 가나 책부터 챙겼고 수첩에 항상 메모하는 것이 습관이었다"며 "장관들이 보고서를 써올려도 본인이 연구하고 소화해서 다시 나름의 철학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이 꼭 있었다.

공직생활을 오래한 관료들도 감동을 받고는 했다"고 전했다. 그는 "DJ는 5년간 재임하면서 75개의 대학노트를 남겼는데 정부 시책에 대한 방향과 정리가 빼곡히 담겨져 있다"며 "앞으로 정부에서 잘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전 전 원장은 김 전 대통령이 민주화와 남북관계를 진전시킨 역사적인 정치인으로 평가받지만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 "옆에서 모셔 보니 참모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자신의 생각을 돌리는 경우도 많았다"며 "독서량이 많고 언어 구사가 논리적이며 TV를 보면서도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성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DJ는 항상 '정치인이 만나는 첫 번째 국민은 언론'이라고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라고 주문하곤 했다"고 덧붙였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