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자칭' 진보세력은 미국의 진보와는 큰 차이가 있다. 우선 미국에는 좌파단체라는 게 없다. 공산당은 사라진 지 오래고 사회주의 추종자들도 이미 없어졌다. 그러면 미국의 진보세력은 보수세력과 무엇이 다른가. 차이는 대체로 국내 정책에서 나타나며 국익이 걸려 있는 대외 정책엔 별다른 점이 없다.

대외 정책에서 차이가 있다면 주로 국가 안보와 관련해서다. 진보세력은 세계 평화를 위해 미국이 앞장서야 되지만 평화는 대화로 얻어야지 무력으로 쟁취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공화당 등 보수세력은 이른바 '평화는 힘으로 얻어지는 것(Peace by Strength)'인 만큼 국방력을 키워야 한다고 믿는다. 이념적으로 그렇게 큰 차이는 없다. 진보와 보수가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분야는 국내 경제 정책이다.

보수는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간섭이 역효과를 불러온다는 입장이다. '국가 재정에 큰 몫을 하는 기업을 너무 적대시하지 말라,기업의 확장 없이는 일자리 창출이 어렵고 경제가 발전할 수 없다'는 요지다.

미국은 90%의 세금이 상위 10%의 고소득자들에게서 나온다. 보수세력들은 부자들을 마치 죄인처럼 취급하고 툭하면 세금을 올리는 건 기업가정신을 저해해 결국 국가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는 논리를 편다. 정부는 누구에게나 균등한 기회를 주는 정책을 펴야지,빼앗아서 나눠주는 분배정책은 반민주정책이라는 것이다.

반면 진보세력은 부자들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해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을 돕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난하고 무지한 환경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평생 이런 환경을 벗어나지 못한 채 범죄의 소굴에 빠지는 등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란 논리다.

같은 맥락에서 보수세력은 공기업 민영화를 적극 추진한다. 시장원리에 따르자면 생존하기 어려운 기업을 국민의 세금으로 살려내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반대로 진보세력은 필수적 공공재라면 다소 재정에 부담이 되더라도 공기업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다르다. 기업에 대한 공적 자금 투입 역시 장기적으로 국민경제에 도움이 된다면 활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어떤가. 보수와 진보세력이 툭하면 이념으로 편을 갈라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기 일쑤다.

가령 미디어법만 해도 보수세력은 언론에 거대 자본이 투입됨으로써 언론시장이 확장되고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줄 수 있으며,동시에 일자리도 생길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진보세력은 재벌과 거대 신문사들의 방송 장악을 통해 영구 집권하려는 정부 여당의 음모라고 주장한다. 정책의 효과를 진지하게 따져보는 게 아니라 일단 이면에 깔린 불순한 의도부터 찾는 식이다.

쌍용차 사태는 극명한 대립 관계의 또 다른 예다. 힘 없는 쌍용차 직원들을 보호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된 노조의 파업은 결국 과격한 투쟁으로 이어지고 회사를 파산으로 몰고갈 뻔했다. 한국에서 진보를 표방하는 '좌파단체'의 대부분은 노조의 투쟁을 정당하다고 강변했다.

미국이라면 제 아무리 진보라도 쌍용차 노조가 보여준 것과 같은 불법 행위에는 공감을 보내지 않는다. 노조가 아무리 절박한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공장을 점거하고 자동차와 타이어에 불을 지르며 경찰을 향해 화염병을 던지는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자기 집에 허가 없이 들어와서 나가달라는 요청에 세 번까지 응하지 않으면 가족 보호를 명분으로 발포하는 것이 정당방위로 해석될 정도다.

그런데 한국에선 현직 국회의원이 천막을 치고 불법을 자행하는 노조 편에 서서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고,만일 국회의원들이 동조해 거리에 나섰다면 '국회의원답지 않은 행동'이란 이유로 곧바로 윤리위원회에 회부돼 의원직을 상실할 수도 있다. 미국의 진보세력인 민주당 의원들은 결코 장외 투쟁이나 불법 시위에 가담하지 않는다. 나는 보수파 공화당 출신이지만 단 한번도 '국회의원답지 않은 행동'을 하는 진보파 민주당 의원들을 본 적이 없다.

대한민국이나 미국이나 진보세력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은 똑같을 것이다. 진보세력은 다시는 이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집 단속을 잘 해야 할 것이다.

전 미국 연방 하원의원 · 한미워싱턴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