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8 · 15 경축사에서 북한의 호응을 끌어낼 수 있는 획기적 제안보다는 그간의 원칙을 재강조하면서 핵 폐기와 함께 재래식 무기 감축도 병행돼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신한반도 평화구상'으로 이름 지어진 대북 메시지는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폐기하고 개방할 경우 국제 사회와 공조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겠다는 것을 천명하고 조건 없는 남북 대화를 하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대선 주요 공약인 '비핵 · 개방 3000'구상을 좀더 구체화했다. 세부 내용은 △북한 주민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국제 협력프로그램 적극 실행 △남북 경제 공동체 실현을 위한 고위급 회의 설치 △관련국 및 국제기구와 협력을 통한 경제 교육 재정 인프라 생활향상 분야에 걸친 대북 5대 개발 프로젝트 추진 등이다.

단순한 대북 지원을 넘어 북한 스스로 경제 개발을 이룩하도록 포괄적으로 협력한다는 구상이다. 이와 관련,청와대는 비무장지대(DMZ)를 평화 구역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DMZ를 가로지르는 남북경협평화공단 설치도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대통령이 "어떻게 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는지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밝힌 대목은 일방적 핵 포기를 강요하는 차원이 아니라 핵을 포기할 수 있는 안보 환경 조성까지를 포괄하는 대화를 하자는 뜻으로 해석된다. 북한 비핵화와 북 · 미 관계 정상화,남북관계 개선,남북 간 군축,평화협정 체결 등을 포괄해 논의하자는 '한반도 평화체제'구상과도 맥이 닿아 있다. 경협에만 머무르지 않고 정치 군사까지 대화의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의미다.

특히 이 대통령은 "눈앞에서 총부리를 겨누면서 어떻게 진정한 화해와 협력을 말할 수 있겠나"라며 남북 간 재래식 무기 감축 필요성을 역설했다. 재래식 무기와 병력을 감축할 경우 막대한 예산과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남북이 함께 경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논리다. 비핵화 및 재래식 무기 감축 협상 트랙을 함께 돌림으로써 북한 핵 폐기에 동기를 부여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 현재 북한은 장사정포 300~400여문을 포함,서울 및 수도권을 사정권에 둔 1300여개의 포를 DMZ 근처에 배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급 회의 제의는 지난해 4월 미국 방문 당시 제안한 '서울 · 평양 연락사무소' 설치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임기 중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는 뜻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이 같은 제안에 북한이 단기간에 호응하고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우선 북한이 강조하는 6 · 15공동선언과 10 · 4남북정상선언의 이행에 대한 언급이 경축사에 없다. 북한은 두 선언의 존중 및 이행을 통일과 반통일을 가름하는 '시금석'이라는 식으로 주장하고 있다. '선 북핵폐기,후 지원'이라고 못을 박아 북한으로선 선뜻 응하기가 쉽지 않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