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이르면 10일 평양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억류중인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가 석방되고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의 개선의 물꼬가 트일지 주목된다.

현 회장의 방북은 지난 4일 금강산에서 열린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6주기 추모행사 때 평양에서 온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에 의해 제안돼 현대측과 정부가 함께 수용 여부를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은 지난 5월에도 남측의 한 대북 지원단체의 평양 행사에 현 회장이 반드시 방북단 멤버로 참가하기를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보냈었지만 이 단체의 행사가 정부의 불허로 불발되면서 방북이 성사되지 못했다.

북측의 이러한 태도로 미뤄 이번에 현 회장이 평양을 방문하면 지난 4일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때와 마찬가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현 회장을 면담하고 현대아산과 북측간 각종 사업을 챙길 가능성이 크다.

한 대북 전문가는 9일 "북측이 현 회장을 평양으로 초청했다는 것은 김 위원장의 면담을 전제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유모씨 문제 등 산적한 남북간 현안이 풀려나갈 전기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단 김 위원장이 현 회장을 면담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130일 넘게 북측에 억류된 현대아산 직원 유씨가 석방돼 현 회장과 함께 귀환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현대아산측과 북측은 그 동안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접촉을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석방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또 북측의 토지임대료와 임금 인상 등의 요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개성공단 문제와 작년 7월 남측의 관광객 피격사망 이후 중단된 금강산 관광사업 등 현대아산의 사업에 새로운 전기를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금강산 관광 중단의 계기가 됐던 박왕자씨 사망에 유감을 표시하고 유사 사건의 재발방지 대책 논의 등에 적극성을 보인다면 남한 정부도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명분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김 위원장은 현 회장을 통해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도 남북관계 개선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제임스 존스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9일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에 대한 질문에 "북한은 미국과 새로운 관계, 더 나은 관계를 원하고 있다는 점을 내비쳤다"고 말했다.

북측이 클린턴 전 대통령을 통해 미국 오바마 행정부에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다.

북한의 노동신문은 8일자 '동족 대결정책은 파산을 면치 못한다'라는 제목의 논설에서 지난해말부터 취해온 "북남관계와 통일문제를 논할 추호의 여지도 없다"거나 남북관계는 "더 이상 수습할 방법도, 바로잡을 희망도 없게 됐다"던 입장에서 벗어나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북과 남이 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책임적인 조치들을 취해 나간다면 조선반도에서 얼마든지 군사적 대결과 전쟁위험을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지난 4월 장거리로켓 발사와 5월 제2차 핵실험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속에서 국면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만큼 남북관계에서도 현대아산을 통해 이러한 노력을 이어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특히 고 정주영 명예회장, 정몽헌 회장 등 현대그룹 총수들은 남북관계가 전무한 상황에서 대북사업을 시작해 남북관계를 만들었고 남북 양측 당국간 관계에서 촉매제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북측은 현정은 회장을 남북관계 복구를 위한 메신저로 적극 활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8.15를 앞둔 시점에 북측의 이 같은 메시지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담은 이명박 대통령의 경축사로 이어진다면 대립으로만 치닫던 남북관계가 개선의 급물살을 탈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유씨 문제와 대남관계에 대해 북한이 전향적인 입장을 보인다면, 이는 방북한 클린턴 전 대통령이 전한 오바마 행정부의 메시지 내용중 일부이기도 한 만큼, 김 위원장이 클린턴 전 대통령을 통해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전한 대미관계 개선의 메시지의 진지성을 강조하는 효과도 있을 수 있다.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jy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