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향년 85세로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반세기만에 남북 교류협력의 수준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6.15공동선언과 금강산 관광, 경의선 철도연결, 개성공단 착공 등은 그의 업적이다.

노벨 평화상을 받으며 국제적인 평가를 얻은 것도 이같은 ‘햇볕 정책’ 덕분이었다.대북 송금 비리 등으로 다소 빛이 바랬지만 한반도 평화에 대한 그의 기여도를 무시할 이는 거의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통일 철학은 1971년 대선 후보일 때부터 정립됐다.당시 신민당 후보로 나선 그는 평화공존과 평화교류,평화통일의 ‘3단계 통일론’을 제시하며 박정희 대통령의 안보 논리에 맞섰다.

기존의 대북 흡수통일론을 배격하고 대북 포용정책을 주창한 것이다.그는 취임 후 2000년 3월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행한 연설에서 남북간 화해와 협력에 관한 ‘베를린 선언’을 발표하는 등 이른바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특히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두 손을 맞잡은 순간은 국민의 뇌리에 생생하다.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해 분단 사상 55년 만에 첫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첫날 김 위원장은 일반의 예상을 깨고 순안공항으로 직접 영접을 나오는 적극성을 보였다.두 정상은 평양시내까지 55분간 같은 차량에 올라 기탄없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 모든 장면은 전 세계에 생중계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해 10월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과 남북간 깊은 교류 협력을 명시한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에 큰 변화를 몰고왔다.이산가족방문단 교환,남북장관급회담,남북 경제협력추진위원회의 구성 등이 이어졌고 단절됐던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을 위한 복원공사가 이뤄졌다.

특히 2000년 시작된 개성공단 관련 협의가 급진전되면서 착공에 들어갔고,남북 경제협력과 민간교류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됐다.2003년 남북이 육로관광 실시를 합의하면서 금강산 관광사업이 시작됐다.

남북관계에 미친 그의 업적은 집권 말기부터 불거진 대북 송금 비리로 빛을 잃기도 했지만 퇴임 후에도 그는 노무현 정부에 6자 회담과 관련된 조언을 내놓는 등 햇볕 정책에 대한 수호자를 자임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