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를 기치로 내건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1998년 초는 IMF(국제통화기금)체제로 들어선 한국경제가 한창 내리막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순간 우리는 어둠의 터널을 향해 가고 있다.하지만 곧 터널을 빠져나갈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자신감은 불과 9개월 후에 현실화됐다.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짧은 기간 안에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는 김 전 대통령의 위기돌파를 위한 결단의 리더십과 과감한 경제 구조개혁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하자 마자 국가부도 위험을 극복하는 것이 급박한 과제였던 만큼 외화유동성 확보에 주력했다.IMF와 자금지원 합의를 통해 취임후 불과 한달만에 214억달러를 도입했으며 금융기관 단기외채에 대한 만기연장,외평채의 성공적 발행 등을 잇따라 성사시켰다.이 덕에 천정부지로 치솟던 환율은 안정됐고 금리도 내려갈 수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은 이와함께 과감한 경제구조개혁에 돌입했다.부실의 싹을 근본적으로 도려내기 위해 64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공적자금을 신속히 투입,부실 금융사와 부실 기업 퇴출작업을 진행한 것이다.공적자금 투입 방안이 나온 지 한달만에 5개 은행과 55개 기업이 퇴출 명단에 올랐다.

5대 대기업 그룹에 대한 ‘빅딜’(사업교환)이 추진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의 빅딜에 이어 현대와 LG의 반도체 사업 통합 등 기업의 명운을 갈라놓을 만한 것들이 해당 기업들의 온갖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추진됐다.당시 정부 관료를 지낸 한 인사는 “이같은 신속한 구조조정이 없었다면 외환위기로부터 탈출하기까지는 한참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빅딜’ 정책은 이후 두고 두고 논란거리가 되긴 했다.정부가 개입해 대기업 그룹에 대한 강제적인 구조조정에 나선 것은 당시 ‘DJ노믹스’의 한 축을 이뤘던 시장경제의 기본원리를 무시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바로 그것이다.

자본시장을 과감히 개방해 한국을 글로벌 경제권에 본격 편입시킨 것도 김 전 대통령의 ‘공(功)’이자 ‘과(過)’로 평가된다.김 전 대통령은 1998년 5월 자본자유화와 외국인투자유치를 명분으로 내걸고 증권거래업과 선물거래업 등 21개 업종을 외국인에게 전면 개방했다.외국인 주식투자 한도가 철폐된 것도 이 때다.

이후 외국자본은 그야말로 물밀듯 국내로 들어왔다.덕분에 외환시장은 급속히 안정세를 찾았으며 주식시장도 연초 300선 밑에서 그해말 600선 부근까지 2배 가까이 상승했다.하지만 외국자본들은 외환자유화를 기회로 부도 위기에 몰려 헐값이 된 국내 알짜기업들의 지분을 대거 거둬갔으며 결과적으로 우리 경제의 주권을 빼앗긴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이런 공과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 극복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과감한 결단력과 현명한 대처능력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데 대해 부정할 인사는 없을 것이다.특히 ‘분배와 성장’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추구했던 ‘DJ노믹스’는 그의 집권 5년간 새로운 경제 좌표를 제시했으며,나중에는 이같은 경제철학을 담은 ‘대중경제론’이 미국 하버드대 등 유명 대학에서 부교재로 채택되는 등 커다란 호응을 얻기도 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