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1시43분 투병 끝에 서거했다. 향년 85세.

서울 신촌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중이던 김 전 대통령은 18일 새벽 혈압이 크게 떨어지고 호흡 곤란을 겪는 등 병세가 크게 악화돼 집중치료에 들어갔다.

이후 혈압이 회복되며 다소 안정됐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으나 김 전 대통령은 다시 악화된 증세에서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사인은 폐렴 악화로 인한 급성호흡부전증과 이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증의 합병증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23일 63세의 나이로 서거한지 87일만이다.

유족으로 이희호 여사(87)와 장남 김홍일(61) 전 의원, 차남 김홍업(59)씨, 3남 김홍걸(46)씨를 남겼다.

의료진은 당시 김 전 대통령의 혈압이 낮아지자 강심제를 투여해 혈압을 끌어올렸지만, 이로 인해 다시 혈압이 높아지고 호흡이 빨라지는 증상이 반복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13일 폐렴 증세를 보여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김 전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폐색전증이 나타나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채 치료를 받는 등 병세의 호전과 악화를 반복해 왔다.

18일 김 전 대통령의 상태가 악화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박창일 연세의료원장 등 병원 관계자들과 의료진은 비상체제에 들어갔다. 이희호 여사도 중환자실에서 곁을 지키며 쾌유를 기원했지만 김 전 대통령은 결국 눈을 뜨지 못했다.

◆김대중 前 대통령은…

1924년 전라남도 신안에서 출생(호적상 1926년 1월 6일)한 김 전 대통령은 1950년까지 목포일보 사장을 지낸 후 1960년 민의원으로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 1971년까지 6~8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1971년에는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서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전 대통령과 대선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제7대 대통령선거 패배 이후 고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1973년 8월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당시 중앙정보부 요원에게 납치된 '김대중 납치사건'은 전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1976년 '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투옥됐고 1980년 정치활동을 재개했으나 그 해 7월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1982년 형집행정지로 석방돼 미국으로 건너간 김 전 대통령은 귀국 후 김영삼 전 대통령과 통일민주당을 창당하는 등 단일노선을 걷기도 했지만 관계는 오래 가지 못했다.

1992년 12월 제14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낙선, 정계를 은퇴했던 김 전 대통령은 1998년 3번의 도전 끝에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지난 2000년에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대로 평양을 방문, '6·15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는 등 '햇볕정책'을 펼쳐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경닷컴 이진석 기자 ge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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