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 北 자주권 인정' 과시

방북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불법입국 등 죄목으로 북한 사법당국에 의해 실형을 선고받은 여기자 2명에 대해 사과의 뜻을 표했다고 북한이 발표함에 따라 그 의미에 관심이 쏠린다.

북한의 이번 발표는 무엇보다 미국이 북한의 사법 체계를 어긴 자국 여기자들 문제로 북측에 '사과'함으로써 북한의 자주권을 인정했음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5일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결과에 대한 `보도'에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 클린톤은 미국 기자 2명이 우리 나라에 불법입국하여 반공화국 적대행위를 한 데 대하여 심심한 사과의 뜻을 표하고 그들을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관대하게 용서하여 돌려보내줄 데 대한 미국 정부의 간절한 요청을 정중히 전달했다"고 밝혔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개인 자격으로 방북했다는게 미국의 설명이고 북측이 보도한 사과의 주체 역시 '클린턴'이라는 점에서 미측은 정부 공식 입장은 아니라고 빠져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11일 여기자 문제에 대해 "유감(sorry)"이라는 표현을 썼고 인도주의적 차원의 석방 요구 대신 법적 절차인 `사면'을 요청함으로써 북한의 사법 체계, 즉 자주권을 사실상 인정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이 `미측의 사과 및 사면 요청을 받아들여 여기자들을 석방했다'고 대대적으로 공포하는 것은 `미국이 우리의 자주권을 인정했다'고 나라 안팎에 선전하는 의미가 있다고 일각에서는 보고 있다.

또한 이는 향후 북핵과 관련한 협상 국면이 전개됐을 때 북한의 행보를 예측하는데도 일정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의 공식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지난달 18일 제15차 비동맹운동(NAM) 정상회의때 "우리에게 있어서 자주권 존중과 주권평등의 원칙이 없는 대화와 협상이란 있을 수 없다"며 "미국과 그에 추종한 다수의 참가국들이 이 원칙을 줴버림(내버림)으로써 조선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은 영원히 종말을 고했다"고 말한 바 있다.

또 4월14일 6자회담 탈퇴를 선언하는 외무성 성명에서 "조선반도 비핵화를 위한 9.19공동성명에 명시돼 있는 자주권 존중과 주권평등의 정신은 6자회담의 기초이며 생명"이라며 "6자회담이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고 우리의 무장해제와 제도전복만을 노리는 마당으로 화한 이상 6자회담은 그 존재 의의를 돌이길 수 없이 상실했다"고 강변했다.

즉 6자회담 참가국들이 자신들의 "위성발사"를 미사일 발사로 규정하고 제재하는 등 자주권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6자회담에 나갈 수 없다는 것이 북측 논리였다.

이는 바꿔 말하면 자주권이 존중되는 조건에서는 6자회담에 나갈 수 있다는 논리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해석도 일각에서는 나온다.

따라서 북한이 클린턴의 사과와 사면요청을 '자주권 인정'의 측면에서 평가하고 있다면 향후 북핵과 관련한 대화가 모색될때 북한이 `6자회담 복귀 절대 불가'라는 입장에서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를 스스로 마련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