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방송.미디어법의 처리 과정에서 의원들간 거친 몸싸움이 벌어졌던 21일 미국 연방 상원에서는 보기드문 기록이 하나 작성됐다.

상원 법사위원회는 히스패닉계로는 처음으로 미국 연방 대법관 후보로 지명된 소니아 소토마요르 판사에 대한 인준표결을 위해 이날 청문회를 열었다가 단 2분46초만에 회의를 끝낸 것이다.

당초 이날 인준표결을 실시키로 했으나 소수당인 공화당의 요구로 표결 일정을 한주일 연기한다는 것이 이번 청문회에서 이뤄진 유일한 결정이었다.

법사위원장인 패트릭 레이히(민주.버몬트)의원이 개의를 위한 의사봉을 두드리고 난 후 제프 세션스(공화.앨라배마) 의원과 총 325단어의 간략한 발언을 주고받은 후 청문회는 종료됐다.

22일 워싱턴포스트(WP)는 이처럼 청문회가 짧은 시간에 끝난 것이 의회의 역사에서 새로운 기록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만일 이날 법사위 청문회에서 실질적인 성과물이 나왔더라면 의회의 효율성에 관한 새로운 기준이 마련됐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논평했다.

특히 미국의 정치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이방인의 입장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레이히 위원장의 발언 내용이다.

레이히 위원장은 "세션스 의원으로부터 공화당이 인준표결의 연기를 희망한다는 조언을 받았다"는 표현을 썼다.

`누구로부터 조언을 받았다'는 표현은 의안처리 연기를 완곡하게 일컫는 의회 용어다.

표대결에 가면 질 수밖에 없는 소수 정당이 의안처리를 다소나마 지연시키려하자, 다수당 소속의 상임위원장이 "..로부터 조언을 받았다"는 점잖은 말로 소수당의 요구를 수용한다는 입장을 대신한 것이다.

이미 소수당인 공화당이 합법적인 의사진행방해(필리버스터) 전술을 구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한 탓에 다수당인 민주당측도 "표결을 1주일 연기하는 것은 소수당이 요구할 수 있는 권리"라며 너그럽게 넘어간 것이다.

다만 레이히 위원장과 세션스 의원은 카메라 앞에서 뼈있는 몇마디를 주고받았다.

레이히 위원장이 "일단 법사위에서 표결처리되면 상원 본회의에서는 지체없이 표결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해 다음번에는 공화당이 양보해야 한다고 지적하자 세션스 의원은 "(소토마요르 지명자에 대한) 인준이 이뤄진다면 존 로버츠 대법원장에 대한 인준절차보다 훨씬 빨리 진행되는 것"이라고 응수했다.

세션스 의원의 발언은 2005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보수성향인 로버츠 후보를 대법원장에 앉히려 할 당시 민주당 의원들이 반대하며 인준절차를 지연시켰던 것을 상기시킨 것이다.

이에 대해 레이히 위원장은 "당시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문에 인준표결이 1주일 연기됐을 따름"이라고 맞받아쳤다.

이 과정에서 몸싸움이나 고성은커녕 의원들의 얼굴에 짜증스러운 표정조차 읽을 수 없었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sh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