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일 대구시장은 30여년 동안 관가에서 '잔뼈'가 굵었다. 총무처 조직국장,행정안전부 기획관리실장 등 행정부처의 요직을 거쳤다. 정치인이라기보다는 관록 있는 행정관료라고 느끼게 하는 이력이다. 그러나 솔직토크가 시작되자마자 중앙정부에 대한 쓴소리로 그 같은 선입견을 깨버렸다. 김 시장은 "국책사업을 입찰 위주와 매칭펀드 방식으로 진행해 지방자치단체 간의 빈익빈 부익부를 조장한다", "중앙정부는 뭘 하는지 모르겠다"며 자치단체장이 느끼는 고충을 토로했다. 지난 1일 오후 6시께 서울역 대구 · 경북 기업인 라운지에서 진행된 김 시장과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기자들과의 솔직토크는 자정이 넘어서야 막을 내렸다.

요즘 대구가 많은 변화를 추구하고 있죠.

"대구는 최근 15년간 정부의 주요 국책사업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어요. 그나마 제가 취임한 이후 신규사업 국비지원이 272% 늘어났지만 금액면에서는 여전히 타지역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과학산업단지,대구테크노폴리스,성서5차 첨단산업단지 등이 신규사업으로 착공됐거나 추진 중입니다. 고질적인 상수도 오염을 해소할 낙동강수계 취수원 상류 이전사업도 내년에 착수됩니다. 2010년 세계소방관경기대회,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2012년 세계곤충학회,2013년 세계에너지총회 등 세계적인 행사도 잇따라 개최됩니다. "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준비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올림픽,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입니다. 2011년 대회가 열리는 대구스타디움은 '세계 3대 아름다운 스타디움'으로 꼽힐 정도로 잘 조성돼 있습니다. 규모도 크지만 주변에 아름다운 공원이 조성돼 있어 외국 사람들이 입을 딱 벌릴 정도지요. 이제 육상 꿈나무들을 잘 키워 좋은 성적을 내는 일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세계대회 유치과정에서 대구시를 너무 모른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어요. 누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곳에 투자하고 관광 오겠습니까. 대구 브랜드를 세계화하려고 노력 많이 했습니다. 작년 베이징올림픽 때 각국 선수단이 전지훈련 캠프를 한국에 설치했는데 대구가 제일 많이 유치했어요. "

지역균형발전의 묘책은 있나요.

"행정수도나 공기업 이전은 마지막 극약처방입니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지방의 인프라를 수도권과 비슷한 수준으로 구축하는 거죠.영남권 인구가 1350만명인데 허브공항이 없습니다. 국립기관은 모두 서울에 있습니다. '국'자 달린 거 전부 서울에 갖다 놓고 경쟁하라면 말이 됩니까. 서울 4대 병원에 지방환자 비율이 48%라고 합니다. 외국환자를 유치해야지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속담이 '말은 제주도로,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겁니다. "

지역경제를 활성화시켜야 될 텐데요.

"지방 기업가들이 진짜 애국자입니다. 서울에서는 매출 1000억원이면 이름도 거의 알려지지 않지만 지역에서는 대표기업 수준입니다. 그러다 보니 각 단체에 기부금도 내야 하고,행사 때마다 협찬도 해야 하는 등 준조세 부담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오죽하면 '서울로 가야겠다'는 말이 나오겠어요. 이런 점을 감안해 지방기업들의 법인세와 소득세를 몇 푼이라도 내려줬으면 좋겠습니다. "

▼대구는 섬유도시로 알려져 있는데 요즘 많이 힘들지 않나요.

"대구는 섬유도시라는 인식이 너무 강해 피해가 많습니다. 제조업 중 섬유 비중은 18%에 불과합니다. 진짜 주력산업은 60%를 차지하는 정밀기계,금속,부품 · 소재 공업이죠.작년에 워런 버핏이 투자한 대구의 한 회사도 세계적인 정밀공구업체였습니다. 대구는 첨단산업을 위한 최상의 여건을 갖추고 있는데도 아직 국가산업단지가 없는 유일한 도시로 남아 있습니다. "

대구 하면 무더위로도 유명하지요.

"요즘은 가장 더운 도시에서 벗어났습니다. 나무를 많이 심었기 때문입니다. 20년 만에 대구를 찾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가 도심에 웬 나무가 이렇게 많냐는 겁니다. 250만 대도시에 지금도 수달이 나옵니다. 대구 도심을 가로지르는 신천에서 여름에 멱을 감는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이왕 더위로 유명하니까 조만간 폭염축제를 기획해 더위를 상품화할 계획입니다. "

취임 이후 교육과 문화수준도 많이 올랐다던데 .

"경북대 등 국립대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지난 15년간 최악이었습니다. 예전 경북대는 연 · 고대급이었죠. 대구 수성구는 아직도 서울 강남 8학군 수준입니다. 취임 이후 영재과학고를 유치하고 자율형사립고도 지정받는 등 교육도시 만들기에 역량을 모으고 있습니다. 인천에 이어 국내에서는 두 번째로 국제학교도 내년 9월 문을 엽니다. 유료 공연은 대구가 서울 다음으로 많아 압도적인 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봄에는 뮤지컬,가을에는 오페라 축제가 개최됩니다. 공연 관람 인구의 40%가 외지인입니다. 지금은 대작 뮤지컬의 국내 첫 공연을 서울이 아닌 대구에서 하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습니다. 문화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공연제작에 필요한 창작교류센터를 설립할 계획입니다. "

요즘 대구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졌다고들 하는데.

"그렇다면 경제자유구역 지정이 전국에서 가장 늦었겠습니까. 첨단의료복합단지 지정과 관련해서도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가장 적합한 곳이 대구인데도 오히려 정치적으로 밀어붙인다는 오해를 받고 있습니다. 대구는 토지 확보와 입지여건에서 최고 수준이고,최적의 참고 모델로 꼽히는 일본 고베시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국내 유일의 도시입니다. 세계적 의료기업인 지멘스도 경북으로 옮겼습니다. 이런 여건인데도 첨단의료복합단지가 대구로 지정되지 않으면 오히려 정치적으로 역차별받는 거죠."

대구시민들 자랑 좀 해주시죠.

"이거다 싶으면 물불 안 가리고 힘을 모아 줍니다. 팔짱 끼고 보고 있다가 어느 순간 일어납니다. 2011년 세계 육상선수권대회 유치했을 때 시민들이 한마음으로 뭉치는 걸 보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모 일간지 1면에 '대구가 자랑스럽다'고 썼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

재선에 도전하나요.

"중앙 정부에서 근무할 때는 고향 돕는다는 생각으로 일했어요. 막상 와서 보니 서울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지방 사정이 심각했습니다. 대구는 지금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에 들어섰습니다. 당면한 경제위기를 극복해야 하고,도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신성장동력산업을 육성하고,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와 영남권 신공항 건설,국제대회의 차질 없는 준비 등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재선을 통해 그동안 벌여왔던 일들을 실현하고 새로운 대구의 꿈을 이룩하는 데 동참하고 싶은 바람입니다. "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유학생활을 했다면서요.

"농촌에서 4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죠.집에서 포목상을 해 어렵게 자란 것은 아닙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대구로 유학을 와서 혼자 하숙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일이지만 장남이라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부모님의 기대감이 컸고 책임감도 강해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일찍 결혼하셨다던데요.

"아내와 사귄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장인을 아는 아버님 친구분이 빨리 결혼시키라고 권해서 24세에 했어요. 아내는 고등학교 때 영어서클에서 함께 공부하면서 알았습니다. 저는 집사람에게만 8년간 공들여서 결혼했는데 아내는 제가 원 오브 뎀(one of them)이었어요. 나중에 알았지만 우리 집사람은 저와 사귀는 중간에도 선을 세 번이나 봤더라고요. 지금은 어쩔 수 없지만 좀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해요. 결혼 후 군에 입대하면서 바로 별거에 들어갔지요. 딸은 1976년 전역 직전에 처음으로 봤어요. "

결혼생활에 대한 교훈은.

"8년이나 연애하고 결혼했는데도 40세가 되면서 아내가 저보고 대화가 안 된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많이 싸우기도 했죠.나중에 알고 보니 대화의 정의가 여자와 남자가 다르더라고요. 남자는 진지하고 심각한 것을 대화로 생각하는 데 반해 여자는 가벼운 이야기를 대화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경상도 남자 스타일은 사소한 일에 대해 "쓸 데 없는 소리…"라며 말문을 막아버리는데 이게 문제였던 겁니다. 저는 밖에서와 달리 집에서는 말을 잘 안합니다. 부부 사이에서는 남녀가 다르다는 것을 먼저 이해해야 하고,상대방을 바꾸려고 해선 안돼요. "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꼽았는데요.

"박 대통령에 대한 공과는 지금의 잣대로 재단하면 안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매년 수백명이 굶어 죽는 상황에서 고속도로와 댐,항만 같은 것을 건설한다는 발상 자체가 엄청난 식견입니다. 결과를 만들어내는 힘은 역대 대통령 중 최고였다고 평가합니다. 특히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전혀 치부를 안했다는 점은 모든 정치인들이 본받아야 합니다. "

자제분들 키우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

"아들이 키도 크고 인물도 좋은데 학교 다닐 때 공부를 등한시했어요. 저와 대화도 잘 안되고요. 엄마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못 돌봐줘서 그런가,내가 너무 바쁘게 살아서 그런가 하는 생각에 미안하기도 했지요. 그래서 아들이 고2 때 손을 잡고 드라이브를 갔습니다. 여자친구는 있느냐,뭐가 힘드냐며 눈높이를 맞추려고 노력했는데 그나마 아들이 조금은 받아들이더군요. 자식 문제가 사실 가장 어렵습니다. "

좋아하는 운동은.

"등산을 많이 했지요. 그런데 발이 아파서 지난 연말에는 자전거를 배웠는데 참 좋습니다. 대구는 신천변에서 자전거를 타기가 좋아요. 주말에는 자전거를 차에 싣고 근교 산에 있는 임도에서 주로 탑니다. 임도를 따라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데 처음에는 10번 쉬었는데 지금은 두 번밖에 안쉽니다. "

기업에 더 잘 어울리는 스타일인데.

"아버님이 사업을 하셨고 저에게도 그 피가 흐르고 있어서 상과대학에 갔어요. 그런데 어렸을 때 당숙이 방학 때마다 저를 옆에 재우며 삼국지를 한 시간씩 특강하곤 했지요. 저한테 용돈도 주고 닭까지 잡아 먹이며 세뇌시켰어요. 고시를 해서 집안을 일으키라는 것이지요. 당시에는 대기업을 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4학년 때 고시에 합격했는데 저의 팔자라고 생각합니다. "

경조사 챙기는데 돈이 많이 들텐데요.

"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하면 부하 직원들이 다 압니다. 그러면 시장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겠습니까. 정말 현금이 필요한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는 제 주머니 돈을 씁니다. 다른 생각은 없고 이 원칙만 지킵니다. 업무추진비 같은 것으로 약점을 잡히면 일하기 어렵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는 부고를 아예 안냈어요. 자녀들 결혼 청첩은 내 자녀의 얼굴을 아는 범위까지 한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그 범위를 넘어서면 청첩장이 청구서가 되는 거죠.딸 결혼 때는 청첩장도 안돌렸는데 친구들이 어떻게 알고는 돈을 모아줬어요. "

다시 태어나도 공무원을 하실 건가요.

"생각은 안해봤지만 마음 가는 대로 살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열정과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출세가 바동거린다고 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순리에 따라서 살면 되는데 그거 거스르면 몸 다치고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것 같습니다. "

정리=대구 신경원 기자 shinkis@hankyung.com


<프로필>

김범일 시장은

출생: 1950년 경북 예천

학교: 서울종로초,경북중 · 고,서울대,미국 남가주대(석사)

경력: 올림픽조직위 휘장사업과장,행자부 기획관리실장,산림청장

좌우명: 정도를 걷자

신장 & 몸무게: 174㎝,75㎏

존경하는 인물: 박정희 전 대통령

감명 깊게 읽은 책: 매력국가 만들기

주량: 소주 반병

취미: 바둑, 등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