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간 극한대립 속에 미디어법이 결국 국회의장 직권상정 처리로 결론이 났다. 거듭된 협상에도 불구하고 여야 양당이 이만한 사안 하나조차 합의못해 입법부의 기능을 완전히 마비시키고 정치에 환멸만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어제 직권상정에 대한 성명을 내고 "결국 의장 고유권한으로 논쟁을 종결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상황이 참담하기만 하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참담한 쪽은 집단난투극으로 아수라장이 되고 무법천지로 전락한 국회를 보며 속으로 분노를 삭이는 국민들이다.

아직 경제는 위기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다. 북한의 심각한 안보위협을 가해온 것도 불과 두 달 전이다. 이 모든 어려운 상황은 외면한 채 '공전과 파행'으로 '갈등'만 키워오다 하지하책(下之下策)을 택하고 어제는 종일 육탄전까지 벌였다. 이런 국회를 보는 다수 국민들의 시선이 어떠하겠는가.

물론 의장의 직권상정 자체가 위법도 아니고 편법도 아니다. 끝내 타협이 안될 경우 표결로 다수결에 따라 결론낸다는 것이 민주적 의사결정의 주요한 원칙이라고 볼 때 불가피한 해법이라는 주장은 설득력도 있다. 최근 태풍의 핵처럼 되어버린 미디어법은 시간만 끈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어법이 논의된 지 1년간을 허송세월하고 이제는 야당 지도부의 사퇴선언에다 원색적인 몸싸움만 반복하는 광경을 보면서 바람직한 국회의 입법기능과 정치의 본모습을 다시한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김 의장은 어제 성명에서 국민들 보기 부끄럽다며 몇가지 자성점을 지적했다. 통큰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여야 지도부,개별 헌법기관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의원들,양심에 따른 소신을 관철 못한 온건파,협상 진전을 가로막은 여야의 소수 강경파 모두가 이번 사태에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맞는 지적이다. 지금 18대 국회에서 이 범주에 들지않는 양식 있는 의원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의원직 사퇴를 들고 장외투쟁을 다짐하는 야당과 국회운영의 부담을 한껏 떠안은 여당을 보면서 정치의 실종과 미디어법 처리 이후의 상황이 걱정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