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절날 국회가 또다시 국내외에 망신을 자초하게 됐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원내 1,2당이 동시에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한 상황에서 바로 회의장 밖 중앙홀에서 제헌절 행사가 치러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직 국회의장들은 '국회의 자살행위'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여야 지도부는 요지부동이다.

◆기념식 준비 속 동시 점거 계속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이틀째 국회 본회장을 점거하고 있는 가운데 16일 김형오 국회의장은 여야 원내대표를 불러 원만한 제헌절 행사를 위해 국회 농성 해제를 요구했다. 이에 민주당은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는 한 농성을 풀 수 없다"고 버텼고 한나라당도 "나갈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여야는 국회의장 중재로 3당 원내대표회동을 가졌으나 입장차가 커 결렬됐다. 김 의장은 미디어법 표결을 전제로 회기를 이달 31일까지 6일 더 연기할 것을 여야에 제의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표결처리에 응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여야는 일단 제헌절을 감안해 이날 밤 10시부터 17일 정오까지는 본회의장에 의원 2명씩만 남겨 점거농성을 이어가기로 했다.

이에 따라 국민대표와 3부 요인,각국 외교사절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국회 본청 중앙홀에서 열리는 제헌절 경축식 행사는 대한민국 정치의 후진성을 드러내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의장들 "후배 정치인들 자질 의심"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국회 해산하고도 남을 만큼 무원칙하다"면서 "61주년 경축식에서 축사가 아닌 조사를 읽어야 옳다"고 개탄했다. 김 전 의장은 "후배 정치인들의 자질이 의심스럽다. 국민의 소리를 따갑게 귀담아들어 대오각성해도 부족할 판에 동반 농성이라니…분수를 모르는 자살행위"라고 했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국회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면서 "우선 근본적인 문제를 따지고 사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호/차기현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