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절을 앞두고 개헌론에 불이 붙고 있다. 본지가 18대 국회의원을 전수조사한 결과(개헌 찬성 68.1%)를 보면 일단 개헌을 향해서 충분히 '배'를 띄워볼 만한 여건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는 의미다. 다만 '어디를 향해 갈 것인가'를 두고는 아직 더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4년 중임제(개헌론자의 48.8%)'가 제일 많았지만 공론화 과정에서 대세는 바뀔 가능성도 있다.

◆"단임제 폐해 치유하자"

개헌론자 201명 중에서는 현행 대통령제의 근간을 유지한 상태에서 4년 중임제로 대통령 선출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98명(48.8%)으로 가장 많았다. 분권형 대통령제를 가미하되 최고권력자의 임기와 연임제한만큼은 4년 중임제가 좋다는 견해(7%)까지 합치면 과반수가 넘었다.

서상기 한나라당 의원은 "5년 단임제는 1987년이라는 특수한 시기에 타협의 산물로서 나온 것으로 재선 기회가 없는 대통령이 단 한 번의 임기에 모든 것을 끝마쳐야 한다는 조급증에 빠지기 쉽고,책임을 묻기도 어렵기 때문에 이런 폐해를 없애기 위한 개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민주당 이춘석 의원은 "4년 중임제로 가되 미국처럼 감사권과 예산 편성권을 국회로 넘겨 입법부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다. 김세연 한나라당 의원은 "지방분권을 지금보다 강화한다면 4년 중임제가 좋다"고 했다.

◆"승자독식 구도를 깨야"

분권형 대통령제를 선호한다는 의원들(17.9%)이 내각제(16.9%)를 앞서기 시작한 것도 이번 조사의 특징이다.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집중되다보니 대통령 선거가 사생결단식으로 흐르고 임기 말 또는 퇴임 후에는 결국 불행해지더라는 것이다.

윤상현 한나라당 의원은 "현행 헌법상 대통령은 입법 사법 행정 3권 분립을 뛰어 넘는 제왕적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승자독식 구도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효석 민주당 의원도 "국회가 구조적으로 파행을 겪는 문제와 한국정치의 양극화를 풀기 위해선 내각수반과 국가수반을 분리하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바람직하다"고 힘을 실었다. "대통령제에서 내각제로 단숨에 넘어가기 어려우니까 중간에 이원집정부제(분권형 대통령제의 다른 이름)를 거쳐 자연스럽게 이행하도록 하자"(정태근 한나라당 의원)는 주장도 있었다.

◆"지방선거 끝나면 바로"

개헌시기는 내년 하반기가 적당(30.3%)하다는 답변이 가장 많은 가운데 대체로 올해부터 내년 말 사이가 가장 적합한 시기라는 의견이 대다수(71.6%)였다. 2012년 총선과 대선 후보군이 수면위로 떠오르는 2011년까지 끌고 갈 경우 늦다는 지적이다.

송광호 한나라당 의원은 "내년 지방선거와 맞물리면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순 민주당 의원도 "지금 당장은 민생도 어렵고 여야가 대립하고 있는 이슈도 많은 만큼 2010년 6월 지방선거 이후 공론화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개헌 반대론자도 상당수


개헌 반대론자의 수는 적었지만(7.5%) 내세우는 근거만큼은 뚜렷했다.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정치인들의 행태가 문제라는 것이다. 최병국 한나라당 의원은 "지금의 정치문화로는 어떤 정치제도를 가지고 와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고,고흥길 의원도 "정치인들이 운용의 묘를 살리지 못하는 것을 가지고 헌법을 문제삼는 것 자체가 코미디"라고 지적했다.

차기현/구동회/민지혜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