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이던 지난해 5월.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는 파격적인 외교정책 구상을 내놓았다. 그는 "집권하면 북한 등과 같은 불량국가의 지도자들과 조건 없이 만날 것"이라고 선언했다. "초기 부시 정부가 북한과 대화를 하지 않았던 게 북한의 핵 개발로 이어졌다"고 비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 연설에서도 "미국에 주먹을 펴서 손바닥을 보여주면 적국과도 대화를 하겠다"고 다시 확인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한국을 제쳐둔 채 미국과 직접 통하겠다는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이 오바마 정부에서 먹혀들까 우려가 나왔다. 그러던 중 북한이 지난 4월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면서 미국을 시험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에 "추가 도발행위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경고했으나 종이 호랑이였다. 북한은 5월 2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새벽에 긴급성명을 내 "북한은 직접적이고 무모하게 도전해 국제사회의 대응을 자초했다"고 격노했다.

지난 6월16일 이명박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서는 한층 단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한국에 핵 우산 등 확장 억지력을 보장한다"고 선언했다. "북한이 도발해 놓으면 미국과 한국 등 국제사회가 보상해 주는 과거 패턴을 깰 것"이라고 천명했다. 후보 시절의 오바마가 더 이상 아니었다.

이후 오바마 정부의 대북 제재와 압박은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한 · 미 정상회담 하루 뒤인 지난달 17일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물자를 실은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의 강남 1호를 미군이 해상 추적에 나섰다. 사흘 뒤 미 정부 내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 1874호를 이행하기 위한 관계 부처 합동 태스크포스(TF)가 구축됐다. 30일에는 미 국무부와 재무부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연관된 혐의로 북한 무역회사인 남촌강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했다. 1일 국무부는 분배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앞으로 인도적인 식량조차 북한에 추가로 지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2일 오바마 대통령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북 추가 제재가 있을 수 있다"고 시사했다. "북한이 경제 문제를 해결하고 국제사회에 편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핵을 포기하는 것 뿐"이라고 거듭 촉구했다. 대화의 길은 열어놓되 '주먹을 펴지 않는' 이상 원칙대로 대응한다는 일관된 행동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