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군(軍)에도 비정규직 비상이 걸렸다. 또 대전 대덕연구단지에서는 석사급 이상 50여명이 해고됐다. 지방 영세기업들도 소리없이 비정규직을 내보내고 있다. 수도권 기업과 공기업에서 촉발된 비정규직 사태가 전방위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실태 파악도 못한 채 허둥대고 있다.

◆군(軍)도 비정규직 '딜레마'

2일 국방부에 따르면 국방부와 육 · 해 · 공군,해병대 등을 통틀어 비정규직은 3000여명(작년 기준)에 달한다.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군 부대 조리사로 근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군의 속성상 채용 절차가 까다운 데다 훈련 강도에 따라 반찬의 종류와 양에 변화를 줘야 하는 나름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 때문에 군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적지 않다.

비정규직 불똥이 튀자 군도 대책마련에 나서야 할 처지다. 하지만 국방부가 비정규직 실태를 종합적으로 파악하지 못해 세부적인 대책이 나오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군병력과 군무원에 비해 비정규직 운용 숫자가 상대적으로 소수인 데다 전국 각지에 군부대가 퍼져 있어 간단한 인원 파악 정도만 통계화해 놨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곧 각 군에 비정규직 실태와 대책을 마련하라는 지침을 내릴 계획이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기 힘들다. 국방부 관계자는 "군도 정원제한을 받고 있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여건이 되지 못한다"며 "장병들의 식생활에 문제가 없도록 대비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덕 고급인력도 비정규직 '멍에'

고급 전문인력들이 몰려 있는 대전광역시 대덕연구단지도 비정규직 사태를 비켜가질 못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 따르면 석사 출신 43명,박사 수료 이상 7명 등 총 50명의 석 · 박사가 짐을 싸야 했다.

박사 학위 이상,또는 전문자격 소지자는 비정규직법의 기간 제한 적용을 받지 않지만 석사 학위 소지자나 박사 수료의 경우는 다른 비정규직들처럼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되거나 해고된다. 이들 전문인력 외에도 대덕연구단지에서는 원자력연구원 시설관리를 맡은 비정규직 32명과 천문연구원 시설관리자 7명이 해고 통보를 받았다.

◆지방 영세기업의 '소리 없는' 해고 확산

울산 남구 여천동의 한 중소기업은 이날 12명의 비정규직을 해고했다. 인천에서는 인천지하철공사에서 중정비 용역을 담당했던 U업체의 비정규직 직원 48명이 한꺼번에 일자리를 잃었다. 이들은 10년 가까운 근무경력을 가진 숙련공들이지만 법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부산에서는 자동차 부품업체 A사가 이달 중 10명을 해고키로 했다. 이 회사 김모 대표는 "비정규직법 사용기한이 유예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며 "앞으로 비정규직 관련법 비적용 대상인 55세 이상 근로자를 고용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대구에서는 계명대 동산의료원,영남대 병원 등이 각각 5명 안팎의 직원을 내보냈다.

사용기한을 남겨둔 기업들도 비정규직 처리 여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200여명의 비정규직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충남 지역 제조업체의 관계자는 "한꺼번에 해고하면 업무 공백이 크기 때문에 어떻게 선별할지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실태 파악도 못해

1일부터 비정규직 해고 사례가 속출하고 있지만 정부는 현황 파악을 못하고 있다. 기업들이 비정규직 고용상황 공개를 꺼린 탓이다. 계약직 노동자의 계약해지는 정규직 해고와는 달리 노동부에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 경기지방노동청 관계자는 "기업별로 연락을 하면 제대로 답을 주지 않고 있다"며 "이 때문에 정확한 해고 숫자를 파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뒤늦게 부랴부랴 현황 파악을 위한 구체적 조사 지침을 만들고 있지만 다음 주나 돼야 조사에 착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민노총과 한국노총 등 노동계도 " 사태 파악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정규직 중심으로 운영되다보니 중소기업까지 조사 범위가 미치지 못하고 있다. 자체 창구 등을 마련해 상담을 받고 있으나 관련 접수 현황도 미미한 수준이다.

김태철/울산=하인식/대구=신경원/부산=김태현 /인천=김인완 기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