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희한한 일이다. 33조원의 혈세가 들어가는 공사인데 정작 간다는 사람이 없다. 대통령은 예정대로 추진한다고 하는데 공무원들은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한쪽에서는 '선물'이라고 하는데 또 다른 쪽에선 '재앙'이라고 한다.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와 지방 혁신도시 건설을 둘러싼 기묘한 풍경이다. 파국적 결말이 뻔히 보이는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뒷짐을 지고 있다. 건설현장의 덤프트럭과 포클레인만 먼지를 풀풀 내고 달릴 뿐이다. 유례없는 건설경기 불황 속에서도 매달 조(兆) 단위의 예산을 잡아먹는 토목공사다.

타이머는 이미 2012년에 맞춰져 있다. 건설이 끝나면 관청과 기업이 줄줄이 입주해야 한다. 하지만 이대로 간다면 1개의 행복시와 10개의 혁신도시 대신 11개의 황량한 신도시가 탄생할 수밖에 없다. 반듯하게 정리된 시가지와 최신식 건물,푸른 녹지를 갖추고도 텅 비어 있는 도시 말이다.

목표 인구는 총 77만명(세종시 50만명+혁신도시 27만명).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지역 아파트를 분양받겠다고 나서는 이들은 없다. 법에 따라 강제 이주(?)해야 할 사람들은 고작 6만여명.그나마 대부분 '설마…'하는 심정으로 현실에 눈을 감고 있다.

혹자는 '매몰 비용(sunk cost)'을 거론하며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건설을) 그만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들어간 돈보다 앞으로 부담해야 할 더 큰 비용을 떠올려보라는 얘기다. 타당한 의견일 수 있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입을 열지는 않는다. 누군가 자신을 대신해 얘기를 하거나 실천해주길 바랄 뿐이다. 청와대 여당 정부의 책임있는 당국자들 모두 그렇다.

이명박 정부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과거 살벌한 대립각을 세웠던 노무현 정부가 말뚝을 박고 대못질을 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일이 잘못돼도 책임을 전 정권에 떠넘길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시간만 보내고 있다.

신도시 건설 강행을 주장하는 야당과 지방자치단체들은 어떤가. 이들의 관심이 지방의 진정한 혁신에 있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행정부와 공기업 이전으로 지역경제가 진정 활성화될 것으로 믿는 눈치도 아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정치적 타협과 야합의 결과물을 스스로 '이권화'하고 있다는 눈총을 받고 있다. 기계적인 분권론이라면 경제가 아니라 선거전략에 가깝다. 결국 한쪽은 무력하고 한쪽은 맹목적이다. 솔루션이 나올 수 없다. 어떤 전문가들의 건전한 대안에도 정치색이 입혀지는 판이다.

째깍 째깍….시간은 어김없이 흐르는데 용기는 실종됐고 공론은 무위에 그친다. 그러다 2012년 텅 빈 도시가 개장하게 된다면….시한폭탄이 펑 하고 터진 아수라장에 서로를 헐뜯는 비난과 욕설만 난무할 게다. 국민들의 억장이 무너지는 것도 모른 채….

특별취재팀장=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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