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남편들 21일 통화 "겁에 질린듯 했다"

지난 3월 17일 오전 중국과 북한 국경 인근에서 북한군 국경수비대에 의해 체포된 미국 커런트 TV 소속 여기자인 한국계 유나 리와 중국계 로라 링이 25일로 억류 100일을 맞았다.

두 여기자는 북한 당국에 의해 불법 침입 혐의 등으로 재판에 회부된 뒤 12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구금돼 있다.

지난 21일 미국의 남편들과 두 번째 전화통화가 허용되기는 했으나 북핵문제가 연계되면서 미국과 북한 의 석방 협상은 당분간 난항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 샌프란시스코서 석방 촉구 집회 = 유나 리와 로라 링의 가족과 동료들은 24일 밤(이하 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집회를 갖고 북한 측에 두 여기자의 석방을 거듭 촉구했다.

로라 링의 남편 아이언 클레이튼은 이날 집회에 참석했다 기자들과 만나 "로라 링이 지난 일요일(21일) 밤에 전화를 걸어왔으며 목소리가 다소 두렵고 겁에 질린 듯 들렸다"고 말했다.

클레이튼은 "아내가 전화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려 애썼지만 걱정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유나 리의 남편 마이클 샐데이트도 "(로라 링과) 같은 날 아내의 소식을 듣게 됐으며 아내 역시 겁에 질려 있는 목소리였다"고 말했다.

이날 석방촉구 집회는 유나 리가 졸업한 방송예술학교인 `아카데미 오브 아트 유니버시티' 주최로 오후 6시부터 2시간 동안 샌프란시스코 도심에 있는 강당 `모건 오디토리엄'에서 열렸다.

두 여기자의 남편들을 비롯해 교수와 학생, 동창, 시민, 샌프란시스코 시 당국 및 시의회 관계자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클레이튼은 "우리 가족들이 이미 북한 당국에 대해 사과 의사를 전달했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석방해 주길 희망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유나 리의 대학 친구들은 "유나 리가 방송ㆍ제작 등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고 일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고 회고하며 "유나 리가 지금 북한에 있다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날 집회에선 샌프란시스코 시내 자선 합창단 등이 여기자들의 조기 석방을 기원하며 노래 공연 등을 선보였으며 아시안위크 등 아시아 지역 언론사와 아시안아메리칸 저널리스트 협회 등 언론 관련 단체 인사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샌프란시스코 시의원들은 "여기자들의 석방을 위해 우리 모두가 한마음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행복한 결말을 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 여기자들 석방 전망은 = 두 여기자가 북한에 억류된 이후 커런트 TV의 설립자인 앨 고어 전부통령과 방북 경험이 있는 빌 리처드슨 미국 뉴멕시코 주지사가 특사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윌리엄 페리 전 방장관도 물망에 오르면서 석방 협상이 본궤도에 오르는 게 아니냐는 기대감을 낳기도 했다.

북한은 그러나 지난 4일 두 여기자를 재판에 회부한다고 발표했고 평양 재판소를 통해 5일간의 재판 과정을 거친 뒤 12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해 버렸다.

두 여기자에 대해 예상 밖의 중형이 선고된 데 대해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는 `재판 결과가 나왔으니 조기 석방을 유도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겠느냐'고 보는 입장과 `재판 결과에 따라 상당 기간 수형 생활이 불가피하다'는 해석이 엇갈렸다.

미국 국무부는 두 여기자의 석방이 "매우 중요한 문제로 최우선 순위에 있다"고 강조하면서 북미간에 직접 접촉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으나 접촉 경로 등에 대해서는 "많은 다양한 수단을 쓰고 있다"고만 밝히고 있다.

북한 전문가인 미국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장 신기욱 교수는 "형을 선고한 이상 북한 당국의 속성상 두 여기자가 수형 생활을 하는 모습을 최소한 외부 세계에 보여주고 싶어할 것"이라며 "북미 관계 진전에 달려있긴 하지만 빨라야 올해 가을 이후에나 석방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조기 석방을 예측하긴 어렵지만 올해 여름은 지나야 북미 간에 협상의 단초가 마련될 것으로 보이며 앨 고어 전부통령의 방북 카드는 상당히 효율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방북 경험을 가진 미국내 한 대북 전문가는 "석방을 위해선 북미간 공식 협상이 이뤄져야 하고 북한이 상당한 금전적 혜택을 요구할 것으로 보여 조기 석방을 위해선 북한의 요구에 대한 수용 여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재로선 북핵 문제 등을 둘러싸고 미국과 북한간의 대결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두 여기자의 석방 협상문제도 양국간의 정치적 타협 없이는 당분간 해결책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우세해 보인다.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김성용 특파원 ks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