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북중관계상 환대 어려운데 후계자 첫 나들이?"

중국 정부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내정된 3남 정운의 방중 보도에 대해 "007소설과 같은 얘기"라며 이례적으로 강하게 부인했지만, 사실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의 후계체제 구축 진전속도나 북중간 외교관행 등에 비춰 일본 언론의 `정운 방중' 보도에 큰 신빙성을 두지 않았다.

우선 김 위원장이 정운을 후계자로 내정하긴 했지만 김정운은 아직 북한 내부에서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상황이다.

북한이 정운의 후계자 내정을 중국 지도부에 통보하고 이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려 할 수도 있지만, 중국 지도부와의 상견례는 최소한 정운이 북한 내부적으로 후계자로서 공개 등장한 후에 추진하는 게 정상적인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 1월 정운을 후계자로 내정한 사실을 노동당과 군부 상층부에 비공식적으로 전달한 뒤 지난 5월 말 노동당과 인민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 전 기관과 해외공관에도 통보했으며 정운은 작년 12월께부터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에 동행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건강문제로 인해 `김정운 후계' 구축 과정이 김 위원장의 후계 때에 비해 압축적으로 빨리 진행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북한 주민들에게도 아직 모습을 감추고 있는 정운이 중국 지도부부터 찾는 것은 상궤와 너무 동떨어진다는 지적들이다.

김정일 위원장도 1980년 제6차 당대회를 통해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고도 3년 뒤인 83년에야 후야오방(胡耀邦) 당시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초청으로 방중해 중국 지도부와 만났으며, 그보다 1년전 김일성 주석이 방중, 중국 지도부에게 자신의 후계자로 김정일 위원장이 결정됐음을 공식 설명했었다.

당시 김 위원장은 당 조직비서 겸 선전비서로서 권력 2인자의 공식 직책을 갖고 있었으나, 정운은 현재 국방위 말단 직책인 지도원에 불과하다.

일본 언론도 정운의 공식 직책문제를 의식, 정운이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이라고 주장했으나 조직지도부장은 여전히 김정일 위원장이 겸하고 있다.

김정운이 중국을 방문하는 것은 당대회 같은 공식 행사를 통해 후계자의 지위를 선포한 후에나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중국 지도부 입장에서도 아무리 북한을 배려해준다고 하더라도 겨우 20대 중반에 불과하고 후계자로 내정된 지 6개월도 안되며 정치 경력도 전무한 정운과 상견례를 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특히 현재의 북중관계를 봐도 북한이나 중국이나 정운의 방중을 추진하기 어렵게 돼 있다.

중국은 자국의 만류에도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을 강행한 데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의장성명과 제재결의 채택에 참여함으로써 분노를 표시했고, 외교부나 국방부 등의 고위급 발언을 통해서도 이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북한 입장에서도 차기 지도자인 정운의 후계 내정 후 첫 해외나들이를 중국의 환대를 받을 수 있는 긍정적인 환경이 아니라 갈등이 극심한 시기에 추진한다는 것은 너무 모험적이다.

북한은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과 제재결의 때 중국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지만 누구나 중국을 겨냥했다고 알 정도로 중국에 대한 비난, 섭섭한 감정 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김기남 북한 노동당 비서는 지난 15일 안보리 제재결의를 비난하는 평양시 군중대회에서 중국을 겨냥해 "우리는 익측이 있건 없건 국제적 지원이 있건 없건 자기가 선택한 자주의 길로 보무당당히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9일자 노동신문도 중국의 대북 영향력 시도를 "대국주의", "지배주의"로 비난하고 "반제투쟁을 대신해 줄 나라도 없고 자기 일처럼 성심성의로 도와주는 나라도 없다.

어떤 경우에도 국제적 우의나 연대성에 기대를 걸고 민족의 운명과 관련된 중대한 문제를 남에게 맡길 수 없는 것"이라며 중국의 정치.외교적 지원에 기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진욱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의 입장에서 정운은 아직은 베일에 싸여있는 인물이고 공식 직책도 국방위원회 지도원에 불과한데 성급하게 그를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며, 북한 역시 후계자로 공식 내세우기 전에 정운을 중국 지도부에게 인사시키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욱이 현재 북중관계가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해 최악의 국면"인 점도 상기시켰다.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기자 chs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