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류문제 해결없인 `협상여지' 희박

개성공단 사업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관심을 모았던 11일 개성공단 실무회담은 결국 개성공단의 장래에 `빛'보다는 `그림자'를 드리운 것으로 평가된다.

비록 북한이 협상의 여지는 남겼지만 임금을 현재 수준의 4배로 인상할 것과 이미 납부한 토지임대료를 31배 가량 인상해서 다시 지급하라는 등 무리한 요구를 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우리 정부가 강력히 요구한 억류 근로자 유모씨 문제에 대해 북측은 진전된 입장을 내 놓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북한이 개성공단 근로자 월급으로 요구한 300달러는 중국 수준인 200달러를 훨씬 뛰어넘는 것으로 105개에 달하는 우리 입주기업들이 수용키 어려운 액수로 보인다.

개성공단은 지난 8일 첫 철수업체가 나온데서 보듯 이미 한계 상황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현재 극도로 악화된 남북관계 상황 속에 `장래가 불투명하다'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공단 기업들은 바이어들의 주문량 급감으로 고통받고 있다.

개성공단 입주업체 수는 작년 4월 69개에서 지난 4월 현재 104개로 51% 증가했음에도 불구, 지난 1~4월 입주업체들의 총 수출액은 715만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1천627만달러)에 비해 56.1% 감소했고 총 생산액도 7천454만달러로 작년 동기(7천983만달러) 대비 6.6% 줄어들었다.

기업들의 사정이 그만큼 어렵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입주업체인 비케이전자㈜ 유병기 대표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그런 조건이라면 철수해야 할 것"이라며 "내일 개성공단 입주업체 대표들이 만나기로 했는데 북측이 요구한대로라면 대부분 다 철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계약에 따라 1천600만달러가 완납된 개성공단 1단계(100만평) 토지임대료를 31배 수준인 5억달러로 인상해 달라는 요구 역시 당사자인 현대아산과 토지공사가 수용하기 어렵긴 마찬가지다.

그리고 정부가 개성공단의 본질적 문제로 규정한 억류 근로자 문제에 대해 북측이 이날 진전된 입장을 내 놓지 않은 것은 한마디로 `설상가상' 격이었다.

우리 근로자가 74일째 외부인 접견조차 하지 못한 채 억류돼 현지의 다른 주재원들이 신변 안전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와 입주 기업들이 `돈을 더 달라'는 북측 요구를 받아들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날 북한이 보인 태도로 북한이 개성공단 사업을 접으려는 수순으로 돌입했다고 판단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 않다.

북한이 이날 회담에서 남측과 계속 협의할 의사를 표했고, 오는 19일 다시 만나 협상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지난달 15일 대남 통지문에서 `앞으로 내 놓을 개성공단 관련 새 조건을 수용하기 싫으면 공단에서 나가도 좋다'는 입장을 일방적으로 통보했을 때의 태도와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일단 19일 남북 당국이 다시 만나더라도 유씨 문제에 진전이 없을 경우 실질적 협상의 여지는 거의 없다는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만약 북한이 19일 이전에 유씨를 석방하고 차기 협상 테이블에서 임금 등과 관련, 검토해 볼 수 있는 `수정안'을 내 놓을 경우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동국대 김용현 교수는 "북한이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회담이었다면 대단히 심각한데 19일에 회담을 재개하기로 했다는 측면에서 임금과 토지임대료 인상폭은 조정이 가능할 수도 있다"며 "북한이 개성공단 완전 폐쇄로 방향을 정했다고 예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입주업체 ㈜만선의 성현상 대표는 "북측에서 제시한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면서 "그것은 협상의 시작일 뿐, 북측이 그렇게 바보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jhcho@yna.co.krksw08@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