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처음으로 재판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건강은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검사의 질문에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대답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에 충격을 받아 진술 태도를 바꿀 가능성이 있다는 일부의 예상은 빗나갔다.

박 전 회장은 9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휴켐스(농협의 옛 자회사) 헐값 매각 의혹과 관련한 공판에 피고인으로 출석했다.

박 전 회장은 법정 문앞까지 휠체어를 타고 온 뒤 교도관의 부축을 받아 피고인석에 간신히 앉았다. 허리 디스크 통증으로 자세는 구부정했고,얼굴엔 핏기가 없었다.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대부분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변호인이 "건강이 좋지 않아 쉬고 안정을 취해야 하지 않느냐"고 묻자 박 전 회장은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고 짤막하게 답했다.

그러나 검찰의 질문에는 할 말을 다했다. 목소리는 작았다. 검찰이 "휴켐스 입찰 때 경쟁 업체보다 200억원 높게 써내지 않았느냐"라고 묻자 "내가 알기론 300억원이다"고 말하는 등 자신의 견해를 뚜렷이 밝혔다. 박 전 회장은 지난 5월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에 이뤄진 공판에서는 "예" "사실입니다" 등 주로 단답식으로 대답했다.

한편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박 전 회장은 지난 8일 담당 재판부인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홍승면)에 노 전 대통령 서거 충격 등으로 인한 건강 악화를 이유로 1주일간의 구속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이날 공판에서 "박 전 회장이 정밀검사 등 병원 치료를 원할 때는 주말에 교도관 2명을 대동하고 1박2일로 내보내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