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열린 한 · 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신(新)아시아 구상을 통해 우리 정부의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를 2015년까지 지난해의 2배 수준인 3억9500만달러로 늘리고 각국에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정부는 지난 2005년부터공적개발원조 규모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평균 수준인 국민총소득의 0.25%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누누이 강조한 바 있다.

이러한 원조규모 확대 노력으로 내년이면 명실상부한 선진국 대열 진입을 의미하는 OECD 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하게 된다. 가입을 계기로 이제는 개발원조위원회 회원국 지위에 맞게 진정한 한국형 원조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학교,병원 등 하드웨어 인프라를 구축해주는 것에서 나아가 우리의 경험과 노하우 같은 소프트웨어적 원조를 통해 개발도상국들에 자립할 수 있다는 희망의 싹을 틔워줘야 한다는 것이다. 최대 원조 수혜국이었던 우리야말로 최고의 원조 공여국으로서 필요충분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한국형 원조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의 국가경쟁력의 토대가 된 것이 무엇이었나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한국에 희망이 된 것은 바로 인적 자원을 기반으로 한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있었다. 1960년대 바텔연구소를 통해 한국에 KIST 설립을 지원한 미국의 과학기술 원조가 없었다면 우리는 오늘날과 같은 과학기술 열매를 얻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바텔연구소의 경험과 노하우는 우리나라의 주요 과학기술 연구소 설립과 초기 운영에 큰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한국 과학기술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이제 우리의 과학기술 기관들도 개발도상국에 바텔연구소 같은 역할을 해줘야 할 때다. 우리의 과학기술 수준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국가 경쟁력을 지탱해주는 핵심 분야로 평가받을 정도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은 세계 27위에 그쳤지만 우리의 과학과 기술 인프라 분야는 각각 3위,14위의 성과를 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기술 분야는 아직까지 핵심 공적개발원조 범주에도 들지 못하고 있다. 교육,보건,행정제도,농촌개발,정보통신,산업에너지 및 환경을 주요 공적개발원조 범주로 분류하고 있는 우리 정부는 이제 여기에 과학기술을 추가해야 할 때가 됐다. 우리가 전쟁에서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이 과학기술의 힘이었듯이 개도국이 자생력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과학기술의 힘을 통해 만들어줘야 한다.

수혜국가별 상황에 맞춰 구호와 자립의 적정선을 찾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해답은 역시 잡은 물고기를 주기보다는 낚시하는 법을 가르치는 쪽이라고 생각한다. 쓰면 없어지는 돈이나 물자만으로는 당장의 배고픔과 고통만 덜어줄 뿐,경제적 자립의 기반은 만들어줄 수 없다. 한국만큼 짧은 기간에 경제 발전을 이루고,한국처럼 될 수 있다는 자립의 희망을 심어주려면 그들 스스로 자신의 인적 자산을 기반으로 경제발전의 근간을 만들어야 한다.

체계적인 한국형 과학기술 원조가 그 해답이 될 것이다. 과학기술 연구개발 추진 노하우와 방식,관리 및 평가체계 등에 대한 교육과 지속적인 교류협력 프로그램을 만들고 끊임없는 상호 교류를 추진해야 한다. 일방적인 기술전수 차원이 아니라 과학기술 개발 마인드와 지식을 나누는 쌍방향적인 교류가 중요하다. 또한 우리의 노력이 개도국의 실제 정책에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이 같은 과학기술 원조가 확대될 때 현 정부가 강조하는 자원외교 정책도 한 차원 높게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