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방자치단체의 사무에 대해 포괄적인 사전 감사를 실시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제기한 서울시는 시 및 구청 공무원의 수억원 규모 뇌물사건에 대해 자체 감사를 벌여 '솜방망이 징계'를 내린 적이 있어 지자체 감사에 대한 보완책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헌재 전원재판부는 28일 행정안전부(옛 행정자치부)가 전국 광역시 · 도를 대상으로 사전 합동감사를 실시하는 것은 지자체의 자치사무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헌법재판관 7(위헌) 대 2(합헌)의 의견으로 결정했다. 재판부는 "지자체의 자치사무는 자치권의 본질적 사항이며 자기 책임 하에 수행하는 자치사무에까지 국가 감독이 광범위하게 이뤄진다면 지방자치의 본질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행정자치부는 앞서 2006년 9월 전국 광역시 · 도에 정부합동감사 계획을 통보한 뒤 15일 동안 지자체의 위임사무 및 자치사무에 대해 감사를 실시했다. 이에 서울시는 관련 법률이 자치사무에 관해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사전감사권은 부여한 것이 아니므로 자치행정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지방자치법 제171조는 '행정자치부 장관 또는 시 · 도지사는 지방자치단체의 자치사무에 관해 보고를 받거나 서류 · 장부 또는 회계를 감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 '법령위반 사항에 한해 실시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재판부는 "중앙행정기관이 감독권을 발동하는 경우는 지자체가 구체적으로 법을 위반했을 때로 한정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자치사무에 대한 중앙행정기관의 감사권은 사전적 · 포괄적 감사권이 아니라 대상과 범위가 제한된 감사권"이라며 " 행안부 합동감사는 감사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채 지자체의 모든 자치사무를 대상으로 하고 있고,어떤 사무가 법령을 위반했는지도 밝히지 않아 지방자치권을 침해했다"고 설명했다.

행안부는 결과에 승복하면서도 이번 위헌 결정으로 지자체의 부패에 대한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을 염려하고 있다. 헌재 공개변론 당시 행안부 측 참고인으로 나왔던 한 법대 교수는 "지자체가 민주주의의 풀뿌리이고 보호해야 하지만 법치주의 관점에서 합법적 통제는 유지돼야 한다"며 "독일과 프랑스도 정부의 지자체에 대한 합동감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서울시의 경우 서울지역 도시계획사업과 관련해 시 및 구청 공무원 8명이 부동산 투기업자 등과 결탁해 수억원의 뇌물을 받는 등 불법 행위를 저질러 최근 검찰에 기소됐다. 서울시는 이들 공무원에 대해 혐의를 포착하고 2007년 자체 감사를 실시해 수십 명의 비위를 적발했으나 경고나 주의 · 감봉 등 가벼운 징계에 그쳐 감사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받고 있다.

서울시 외에 다른 지자체도 향후 행안부의 감사를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 경기도 감사실 관계자는 "내부 검토를 거쳐 감사 거부 등에 관한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자체들이 내부 비리를 감시하고 통제할 만한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지자체에 대한 제3자의 감시가 어떤 형태로든 보완돼야 한다"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