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정부가 이번 북한의 핵실험에 전에 없는 강경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번 핵실험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718호 위반이라고 규정하면서 북한을 비난한 데 이어 26일에는 북한과의 정부 간 통상경제 및 과학기술 위원회 회의를 무기한 연기했다.

이런 태도는 지난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직후나 지난달 5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당시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1차 핵실험 직후 러시아는 유엔의 대북 결의를 지지했지만, 한편으론 결의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되며 북한과의 협상을 위한 방편이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북한과 미국에 유연한 자세를 주문하면서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에 대해서는 반대했다.

또 지난달 북한 로켓 발사 때에도 유감 성명을 내긴 했지만 강경 대응은 또 다른 위기를 불러올 것이라면서 대북 제재 자제를 촉구했고, 안보리 의장 성명 채택도 여론에 밀려 서명한 듯한 인상을 줬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번 핵실험에 대해서는 북한에 단단히 화가 난 듯 보인다.

러시아 외교부는 25일 성명에서 "이번 핵실험은 동북아시아에 긴장을 고조시키고 역내 안보와 안정을 위협하는 행위였다"며 "러시아는 이번 핵실험을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 위반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성명은 또 "이번 핵실험으로 역내 긴장이 고조됐으며 한반도 비핵화 노력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미하일 마르겔로프 러시아 연방의회(상원) 외교관계 위원회 위원장은 현지 언론에 "북한의 핵실험은 모든 한반도 비핵화 정책에 쏟아진 외교적 노력이 무산됐음을 의미하며 유엔과 많은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정당한 대응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핵실험 하루만인 26일 러시아는 28~29일 평양에서 예정된 북한과의 정부 간 통상경제 및 과학기술 위원회 무기 연기를 발표했다.

러시아는 `기술적인 문제'를 연기 사유로 들었지만 이번 핵실험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관측통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역내 안보 불안에 대한 우려와 함께 국제사회의 핵무기 감축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를 좌시할 수 없다는 러시아 지도부의 의지로 풀이되고 있다.

현재 러시아는 미국과 오는 12월에 시한이 만료되는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1) 후속 협정 마련을 위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

또 일각에서는 지난달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의 평양 방문 당시 북한이 보여준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당시 라브로프 장관은 6자회담 복귀를 촉구했지만 북한은 `그럴 의사가 없다'라는 한마디로 일축, 무안을 준데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친서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하지도 못하면서 상당히 서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라브로프 장관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친서를 전달해야 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러시아 측에 관련 내용을 사전 통보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북한이 미국과 중국에는 실험 직전 이를 통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스크바 외교 소식통은 연합뉴스에 "지난달 로켓 발사 때 북한이 중국, 러시아, 미국 등에 사전 통보한 것으로 미뤄 볼 때 이번에도 사전 통보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이번 핵실험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자 사전 양해가 없었던 것 아니냐는 추측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을 제재하더라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거나 봉쇄해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도 있지만, 이번 만큼은 안보리 의장국을 맡은 러시아가 국제사회의 여론에 동조할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편 라브로프 외무장관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곧 전화 통화를 갖고 대북 제재와 이후 한반도 긴장 완화 방안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모스크바연합뉴스) 남현호 특파원 hyun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