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서거가 경제 부문에 미칠 영향을 두고 정부와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일단 경제에 미칠 직접적 영향은 극히 제한적일 것이란 게 중론이지만 자칫 이번 사건이 사회적 갈등과 국론분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국회 · 정부 · 재계, 행사 잇따라 취소

정치권은 다음달 1일 열 예정이던 6월 임시국회 개회를 1~2주 순연하기로 합의했다. 애도기간중에 여야 협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도 24일 이명박 대통령과 각 부처 장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향후 5년간 중기재정운용 방향을 논의하기로 했던 '재정전략회의'를 26일 국무회의 직후로 연기했다. 지식경제부도 오는 26~27일 이틀간 열기로 한 신성장동력박람회를 차관급 행사로 축소했다. 한승수 국무총리와 이윤호 장관이 같은 날 열리는 재정전략회의 때문에 행사 참석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경제계도 주요 행사를 잇따라 연기했다. LG그룹은 25일 경기도 파주에서 한 총리와 구본무 회장이 참석하는 가운데 개최할 예정이던 'LG디스플레이 파주 8세대 LCD공장 준공식'을 애도기간 이후로 미뤘다.

◆"대외신인도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23일에 이어 24일에도 출근해 허경욱 1차관,이용걸 2차관,주요 실 · 국장들과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 등을 점검했다. 이와 관련,국제금융센터는 23일 낸 보고서에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정국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일부 우려가 있지만 한국의 대외 신인도와 국내외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번 사건 자체가 정치적 이슈이기 때문에 금융시장에 즉각적인 충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다. 국제금융센터는 다만 최근 세계 경제 및 국제금융시장의 회복 기대감이 다소 약화되는 추세인 데다 북한이 대외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이번 사건으로 국내의 정치 · 사회적 불안이 커질 경우 우리나라의 신용위험도가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향후 경제정책에 미칠 영향은

문제는 이번 사건의 파장이 어디로,얼마만큼 확산될 것인지가 '예측불허'라는 점이다. 정부 내에서는 지난해 촛불사태와 같은 사회적 갈등으로 증폭될 경우 경제살리기를 위한 정책 드라이브에 제동이 걸리지 않을까를 우려하는 분위기도 있다.

정부 한 관계자는 "당장 이번 사건의 책임소재를 둘러싸고 여야 간 극한대립 가능성이 커지면서 6월 임시국회에서 각종 경제살리기 법안 처리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사용제한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비정규직법,금산분리 및 지주회사 규제완화법안,한 · 미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등의 시급한 현안 처리가 불투명해졌다는 얘기다.

한 민간연구기관 관계자는 "갈등이 표면화될 경우 현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각종 경제정책을 추진할 동력을 잃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민간연구기관 관계자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경기침체로 양산되는 소외계층,기업구조조정 추진에 따른 노사갈등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며 "최악의 경우 이 같은 갈등을 치유하기 위한 사회 · 경제적 코스트(비용)가 급증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재계도 이번 사태가 몰고올 파장에 대해 적잖게 신경을 쓰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노동계의 도심집회 등이 몰려있는 이달 말과 다음 달 초의 흐름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재계는 특히 혼란이 가중될 경우 경제정책의 일관성이 훼손될 가능성,한국의 이미지 추락에 따른 해외 거래선들의 동요 및 이탈 가능성 등을 경계하고 있다.

이태명/조일훈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