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의 우리 정치사를 관통한 삶을 살다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기보다 앞서 정권을 잡았던 전직 대통령들과도 정치적 동지이거나 정적으로 맞서며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쌓았다.

노 전 대통령을 제도 정치권으로 이끈 사람은 김영삼(YS) 전 대통령이었지만, 마지막까지 한 배를 탄 동지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와 보스정치 극복을 위해 자신이 청산 대상으로 꼽았던 DJ와 손을 잡고 정치적 신념을 함께 추진했던 것.
90년 3당 합당을 거부, '꼬마민주당'에 남았던 노 전 대통령은 DJ가 95년 정계에 복귀,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할 때 야권분열에 반대해 곧바로 합류하지 않았지만 97년 대선을 앞두고 많은 동지들이 한나라당의 품으로 흩어질 때 영남 출신 정치인으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DJ를 택했다.

DJ는 이런 노 전 대통령을 2000년 해양수산장관으로 발탁해 대선후보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노 전 대통령의 드라마 같은 대선승리를 추동한 민주당 광주 경선의 이변도 DJ의 '침묵 지원'에 힘입은 바 크다.

DJ의 복심인 박지원 의원은 2002년 당시를 회고, "김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가 됐으면 하고 희망했었다"고 연합뉴스에 말했다.

하지만 정작 두 사람의 관계는 늘 긴장과 갈등 요인이 잠복해 있던 애증관계로 점철됐다.

특히 참여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초 대북송금 특검으로 촉발된 양측의 갈등은 2005년 국민의 정부 시절 국정원 불법도청 사건 수사로 최고조에 올랐고, 노 전 대통령이 잇따라 DJ와 맞서는 모양새는 참여정부의 핵심 지지층인 호남의 민심이반을 불러 국정운영의 추진력을 떨어뜨렸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두 사람은 정치, 사회, 경제, 남북관계 등 국정 전반에 걸쳐 '코드'를 공유했다는 점에서 서로 환희와 좌절을 함께 맛본 정치적 동지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DJ는 이번 비보를 접하고 "평생의 민주화 동지를 잃었고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이라며 눈물을 내비쳤다고 한다.

DJ는 노 전 대통령의 국민장 때 봉하마을로 내려갈 예정이다.

YS는 노 전 대통령을 정치권에 입문시킨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그는 1981년 부림사건을 변론하면서 인권변호사로 유명세를 탔던 노 전 대통령을 1998년 13대 총선을 앞두고 통일민주당에 입당시켰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여당의 센 사람과 붙겠다"고 고집해 부산 동구에 출마, 5공 신군부 핵심 인물이었던 허삼수 민정당 후보를 누르고 국회에 진출했지만, YS가 1990년 자신이 이끄는 통일민주당과 민정당, 공화당과 3당 합당을 하자 노 전 대통령은 결별했다.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 노 전 대통령은 YS의 상도동 자택으로 찾아가 YS로부터 선물받은 손목시계를 보이며 "장롱 안에 넣어뒀었는데 지나고 보니 내 생각만 맞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해 3당합당 이후 소원해진 관계에 화해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YS는 노 전 대통령 재임기간 "정부가 엄청난 돈으로 김정일이 핵실험을 하게 했다"며 "준엄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고 하는 등 계속 긴장관계를 유지했다.

역설적이지만 노 전 대통령의 오늘을 있게 한 전직 대통령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전국에 TV로 생중계된 1989년 12월 전두환 전 대통령의 5공비리 및 광주항쟁 청문회는 노 전 대통령을 청문회 스타로 발돋움하게 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전 대통령을 향해 "전두환 살인마'를 외치며 의원명패를 집어던지며 유명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노 전 대통령은 1990년 1월 당시 민정당 총재인 노태우 대통령,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총재가 '구국의 결단'이라는 기치 아래 민자당으로의 3당 합당을 단행했을때 김영삼 총재의 합류 권유를 "역사적 반역"이라고 뿌리치며 `YS사단'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꼬마 민주당'에 남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이후 눈에 띌만한 '정치적 연결고리'를 갖지 못한게 사실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정치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다만 같은 성(姓)을 가진 대통령으로서 국정운영을 잘했으면 하고 늘 응원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송수경 안용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