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소식통들 "비리 명목, 실제론 대남정책 '실패' 책임 물어"

남한의 노무현 정부 시절 북한의 대남사업을 사실상 총괄했던 최승철 전 노동당 통일전선부(통전부) 수석 부부장이 `대남정책 실패' 책임을 지고 작년에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소식통은 18일 이같이 전하며 "표면적인 이유는 남북교류 과정상의 개인 비리지만 실제로는 남한 새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오판'과 남측의 햇볕정책이 북한사회에 미친 영향 등에 대해 (북한 당국이) 책임을 물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소식통은 "최 부부장은 내부 강경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의 남한과 관계 진전을 강력히 밀어붙였고 10.4 남북정상회담 추진도 일선에서 지휘했으나 남한의 정권교체로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정책판단 실책 등 모든 책임을 뒤집어쓴 희생양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다른 대북 소식통도 최 부부장이 처형당한 사실을 확인하면서 "실제 북한이 최 부부장에게 씌운 가장 큰 죄목은 북한 사회 전반에 대남 의존도를 키우고 대남 환상을 심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 당국은 최 부부장이 남북관계를 총괄하면서 북한 내부에 대남 환상을 심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분석평가했고, 이를 상당히 심각하게 받아들여 그를 처형하는 극한 사태까지 빚어진 것"이라며 "북한 내부에서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려는 대남분야 종사자들에게 경종을 울린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은 2007년 9월께부터 통전부와 민경협 등 대남기구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를 진행하면서 남북경협과 접촉, 남한의 대북지원 물자 처리 등의 과정에서 나타난 비리를 색출했다.

이 조사는 초기에는 당 조직지도부와 중앙검찰소가 맡았으나 작년 초부터는 당 행정부와 인민보안성으로 이관돼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이 조사는 비리쪽에 초점이 맞춰졌으나 작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남한 새 정부의 대북정책 변화에 대한 `오판', 10년간 이뤄진 남북교류와 경협 활성화 등이 북한 사회 전반에 미친 부작용에 대한 평가로 확대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남측의 햇볕정책으로 북한 주민들 사이에 대남 의존 심리와 환상이 급속하게 확산되는 것을 못마땅해하던 북한내 강경세력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악화되자 이를 빌미로 최 부부장을 비롯한 대남 협상파 제거에 나섰다는 후문이다.

한 대북 소식통은 "최승철은 비리 정도로 처형될 사람이 아니었다"며 "설사 비리가 있더라도 남북관계가 잘 됐으면 문제가 안됐겠지만, 남북관계가 악화돼 정책을 바꿔야 할 때면 최승철 같은 협상파가 설 자리를 잃게 된다"고 말했다.

▲최승철은 = 1956년생으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1983년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통전부에 들어간 뒤 초고속 승진, 대남분야 실세가 된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그는 남북 화해와 협력의 시대가 열린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통전부 과장으로 남북 적십자회담 북측 단장 등 대남사업의 실무자로 일했고, 노무현 정부 때는 통전부 부부장, 제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겸한 채 북한의 대남정책을 책임졌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대남사업을 직접 보고할 정도로 두터운 신임을 받은 그는 2005년 7월 김 위원장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김윤규 당시 부회장 등을 만날 때 림동옥 당시 통전부장과 함께 배석했으며, 2003년 1월 대통령 특사로 방북한 임동원 당시 통일부 장관을 평양공항에서 마중하기도 했다.

그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는 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을 때부터 방북 전 과정 안내를 맡고 정상회담 합의문 조율 실무작업을 총괄했으며 남북정상회담 후속조치로 열린 남북총리회담과 김양건 통전부장의 서울방문 때도 남한을 방문해 막후조율을 맡았었다.

그러나 남한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진 후 북한에서 그의 모습은 사라졌으며, 황해도의 한 `닭공장(대형 양계장)'에서 혁명화 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지난 1월초 남쪽에 전해지기도 했으나 그때는 이미 처형당한 뒤였던 것으로 이번에 밝혀졌다.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장용훈 기자 chsy@yna.co.krjy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