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게이트'를 수사 중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이인규 검사장)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환조사하며 큰 고비를 넘었지만 관련 의혹은 여전히 안갯속에 있는 양상이다.

검찰은 지난주 초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을 100만 달러 의혹의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한 데 이어 노 전 대통령의 개인 노트북이 아들 건호 씨 소유의 오르고스사로 보내졌다가 되돌아온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들 정황이 박연차 회장이 보낸 600만 달러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돈의 존재를 재임 중 알고 있었거나 주고받는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구체적인 증거가 될지는 미지수다.

권양숙 여사는 여전히 본인이 받았다고 해명한 100만 달러와 3억원의 용처를 명쾌하게 밝히지 못하는 상황이다.

◇ 김만복은 왜 등장하나 = 검찰이 지난주 2차례에 걸쳐 김 전 원장을 소환조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김 전 원장이 100만 달러 의혹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했는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 씨의 미국 행적을 담고 있는 국정원 내부 보고서를 확보하고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김 전 원장을 조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 국정원이 건호 씨가 유학생활 중에 투자 실패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했다는 점을 당시 노 대통령에게 보고, 박 회장에게 돈을 요구하는 계기가 됐다는 말도 나왔다.

이같은 추측이 사실이라면 노 전 대통령이 100만 달러의 존재를 알았다거나 돈을 넘겨받는데 관여했다는 보강 증거가 되는 셈이다.

검찰은 그러나 4일 "100만 달러 의혹과 관련해 김 전 원장을 조사했다"면서도 "조사 내용은 검찰과 김 전 원장만 알 것"이라고 관련 추측을 일절 부인하고 있어 궁금증만 커지고 있다.

◇ 노트북..500만 달러 `열쇠'되나 = 검찰에 따르면 지난해 1월 노 전 대통령의 노트북이 오르고스 사무실로 갔다가 한달 뒤 다시 청와대로 되돌아왔다.

노트북에는 노 전 대통령이 개발한 인맥관리 프로그램인 `노하우 2000'이 저장돼 있었으며 검찰은 건호 씨가 이 프로그램을 상품화하기 위해 노트북을 받은 것이라는 의심을 하고 있다.

건호 씨가 박 회장으로부터 500만 달러를 받아 오르고스에 투자하는 등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했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건호 씨가 아버지의 프로그램을 상품화하려 했다면 노 전 대통령이 500만 달러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개연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 측은 그러나 건호 씨가 해당 프로그램을 사업에 활용하려 했다는 이유로 노 전 대통령이 500만 달러가 송금된 점과 이를 종잣돈으로 한 사업 내용을 알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는 입장이다.

◇ 100만 달러 용처는 여전히 `미궁' = 권 여사는 여전히 100만 달러 용처에 대해 함구하고 있지만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은 "확인해보겠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노 전 대통령도 검찰 조사에서 "집의 설명을 들어보면 잘 기억을 못 하는 부분도 있고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다"며 "(권 여사가) 제대로 기억할 수 있도록 설득해 정리가 되는 대로 제출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 측 내부에서도 더이상 100만 달러 용처를 덮어둘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각종 자료를 모으는 한편 권 여사를 상대로 용처를 구체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권 여사의 기억이 불분명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기억을 잘 못하겠다는 권 여사의 말이 처음에는 대답을 회피하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거듭거듭 얘기해보니까 정말 기억을 잘 못하고 상당히 혼란에 빠진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확인되는 것은 확인되는대로, 확인이 안되는 것은 안되는대로 제시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며 "용처 전체를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은 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자료가 제출되는 대로 검토한 뒤 권 여사 재소환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어서 100만 달러의 행방이 규명될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이한승 기자 jesus786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