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前대통령 검찰출석 이후] 웃으며 나간 盧…지친 검찰…
노무현 전 대통령이 10시간에 걸친 검찰 소환조사를 마치고 대검 청사를 나간 직후인 1일 오전 2시30분께.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이 예정된 마지막 브리핑을 위해 기자들이 모여 있는 대검 2층 강당에 들어섰다. 오전만 해도 생기 넘치던 홍 기획관의 얼굴이 벌개져 있었고 지친 듯 브리핑 내내 단상에 팔을 짚었다.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아 일부 기자들이 "마이크에 대고 말씀해주세요"라고 외치기도 했다.

반면 앞서 2시10분께 귀가하기 위해 대검 청사를 나선 노 전 대통령은 청사에 들어올 때보다 훨씬 여유있는 표정에 당당한 걸음걸이였다. 지난달 30일 아침 김해 봉하마을을 나선 이후 처음으로 취재진에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했다. 이번 소환조사에서 승자는 검찰일까,노 전 대통령일까.

◆노태우 진술 얻어냈던 1995년과 딴판

검찰은 일단 승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홍 수사기획관은 브리핑을 통해 "소기의 성과를 거뒀고 조사가 충분히 이뤄졌다"며 혐의 입증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이어진 그의 설명은 기자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들었다. "노 전 대통령이 제시한 새로운 진술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서면 답변서대로 유지했다"고 말했다. "박연차 회장의 진술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어떻게 반응했나"라는 물음에는 "박 회장 진술을 부인하는 취지로 말했다"고 대답했다. '소환조사에서 새로 밝혀진 내용이 없다'는 것과 진배없었다.

이는 노 전 대통령에 앞서 전직 대통령으로는 유일하게 검찰에 소환됐던 노태우 전 대통령 수사 때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 수사의 대검 주임검사였던 문영호 태평양 고문 변호사에 따르면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5년 11월1일 참고인으로 소환됐을 당시에는 뇌물죄 혐의를 부인했지만,뇌물을 준 기업인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된 후 피의자로 소환돼 온 같은 달 15일에는 "그 사람이 그렇게 진술했다면 맞을 겁니다"라며 시인했다. 대질조사도 필요없는 상황이었다.

검찰은 그러나 노 전 대통령과 박 회장과의 대질조사까지 추진하다 무산됐으며,심지어 권양숙 여사에 대한 재소환 검토를 언론에 흘려 조사 중인 노 전 대통령을 압박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홍 기획관은 앞서 지난달 30일 오후 10시 브리핑에서 "뉴스가 변호인을 통해 노 전 대통령에게 전달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검찰 소환조사라는 것이 증거를 다 확보한 뒤 '빼도 박도 못 하도록 만드는 것'인데 이번 소환조사는 그런 공식과는 다른 모습"이라며 "검찰이 그동안 '블러핑'(포커에서 자기에게 들어온 패가 좋지 않음에도 공격적으로 베팅하는 것)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측 "무죄 명백해졌다"

반면 노 전 대통령 측은 의기양양해진 모습이다. 노 전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입회했던 문재인 변호사(전 청와대 비서실장)는 1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 지금 문제되고 있는 600만달러가 노 전 대통령과 무관하다는 부분은 (소환조사로 인해) 조금 명백해졌으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 변호사는 특히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 혐의의 핵심으로 꼽히는 100만달러의 용처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자세히 모르냐"는 질문에 "그렇다. 노 전 대통령이 알면서 진술을 않는다거나 회피하거나 하는 일은 없다"며 기존의 입장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역시 검찰 조사에 변호인으로 참여했던 전해철 변호사(전 청와대 민정수석)도 "500만달러든,100만달러든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틀리지 않게 다 얘기했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그러나 이번 소환조사 결과가 법정에서 노 전 대통령 측에 결정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의 한 지방법원 판사는 "노 전 대통령과 박 회장의 대질은 법정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고 그 결과 법원이 노 전 대통령의 유죄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임도원/서보미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