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빙의 승부가 예상됐던 29일 경주 재선거가 `친박 무소속'을 내건 정수성 후보의 초반 압승으로 싱겁게 끝났다.

`보복 공천 3인방'으로 찍혀 18대 총선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던 정종복 전 의원은 재선거에서도 끝내 쓴잔을 들었다.

`선거의 여왕'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위력이 다시 증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야당 대표 시절부터 이어온 `박풍(朴風.박근혜 바람)'은 이번에도 거셌다.

박 전 대표는 `친이-친박' 대결구도가 재현된 이번 재.보선엔 최대한 거리를 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정 후보가 오로지 `친박'만을 내세워 압승을 거둠에 따라, 영남권에서 박 전 대표의 절대적 영향력이 다시 입증됐다.

`친박' 브랜드 위력이 다시 확인된 만큼, 당장 10월 재.보선을 비롯해 내년 지방선거 공천에서 박 전 대표의 위상은 한층 공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영남권을 중심으로 한 친박진영의 구심력도 견고해질 전망이다.

물론 그만큼 `친박 무소속' 후보 난립 가능성이 커졌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 친박 중진은 이와 관련, "박근혜의 위력이 다시 증명된 것"이라며 "국민의 마음이 어디에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가 박 전 대표에게 꼭 이득만은 아니라는 시각도 엄존한다.

한 관계자는 "이번 선거 결과가 박 전대표에게 `양날의 칼'이라는 얘기도 있다"고 말했다.

당이 `전패'의 늪에 빠진 상황에서, 재.보선에 철저히 무관심으로 일관한 박 전 대표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당장 이재오계를 비롯한 친이 강경파에서 박 전 대표가 결국 정수성씨를 측면지원했다며 비판할 조짐을 보이고 있고, 전반적인 주류 진영 분위기도 지원유세 한 번 나서지 않는 박 전 대표에게 불만이 팽배해 있는 게 사실이다.

단기적으로는 정치적 영향력을 입증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주류측에 비판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친박측에선 "모든 것이 잘못된 공천 때문"이라며 "솔직히 경주 공천만 제대로 됐다면 박 전 대표가 지원유세에 나설 명분이 됐을 수도 있다.

지도부가 책임져야 될 일"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가 본격적인 친이-친박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일단 박 전 대표 본인이 선거결과를 계기로 갈등의 전면에 나설 의사가 없는데다, 친이-친박 양 진영 모두 당장 전면전으로 치달아서 얻을 것이 없다.

게다가 어찌됐든 친박 후보가 출마해 한나라당에 패배를 안겨준 친박측 입장에서 지도부 책임론을 제기하기엔 명분이 부족하고, 주류측에서도 문제를 제기하다보면 내부 갈등에 휩싸일 가능성이 더 큰 게 사실이다.

이번에도 최소한 인책론만 제기되고 조용히 갈등이 봉합될 것이란 관측이 힘을 받는 또 다른 이유다.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친이도 친박도 이번 선거 결과와 관련해서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친이 강경파 일부에서 책임론을 거론할 수 있겠지만,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연합뉴스) 김경희 기자 kyung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