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때 일 가운데 대표적 논란거리 하나가 대북정책이었다. 전임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이어받은 유화책은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다. 저자세,일방적 퍼주기로 북과 교류했다는 게 비판의 주된 이유다. 남북 간 긴장을 고조시켜온 북이 결국 개성공단까지 위협카드로 악용하면서 이에 대한 논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노 정권 초기에 요직을 지낸 한 중진 정치인에게서 최근 들은 회고담에는 이 문제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대목이 있다. 북의 대남정책 근간에 관한 비화인 셈인데,그의 행정부 경험은 이렇다. 사실상 정권재창출이었지만 노 정부도 집권 초반 북에 거듭 유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북이 딱딱하게 나와 물밑이든 공식적이든 대화가 영 풀리지 않더라는 것이다. 우리 정부에 대해 자기들 나름의 '초기 길들이기''군기잡기'로 치밀하게 계산된 전략이었다는 게 그의 해석이다.

이런 남쪽 다루기에 맞서 '파격적으로' 대응했다고 한다. 그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북에 경제적 지원을 하거나 비중 있는 제안이라도 할 때면 늘 반대급부로 유무형의 무엇을 요구한 것이 관행이었다. 그런데 노 정부는 이런 조건을 붙이지 않았던 것이다. 한 번만이 아니었다. 식량이든 뭐든 몇 차례 '통 큰 지원'을 하면서도 일관되게 조건을 달지 않자 정권 초반기 길들이기를 단념하고 대화도 되더라는 경험담이었다. 일단 대화가 되자 당시에 성사는 안 됐지만 정상회담 카드도 북이 먼저 들고나왔고,심지어 특사를 보내달라면서 남쪽의 특정인사를 지목한 것도 또 하나 알려지지 않은 비사라고 회고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좀 길고 위험수위까지 넘어서고는 있지만 지난해 이후 이런저런 도전도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북 나름대로의 길들이기 시도가 아닌가 싶다. 그 바탕에는 북 특유의 자존심과 벼랑끝 외교도 엿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국력이 진리요 힘이 법인 국제사회에서 약소국이 버티는 법은 두 가지라고 한다. 하나는 강대국에 바짝 붙는 전략이다. 그 그늘에서 지원도 얻고 그 우산 아래에서 생존을 도모한다. 다른 하나는 생떼를 쓰고 도발도 일삼아 주목을 끌면서 쉽게 대하기 껄끄러운 존재로 자리잡는 것이다. 지금 북의 행태는 후자에 해당한다. 물론 북도 과거부터 중국에는 밀착했다는 것이 보편적인 평가이니 유일원칙은 없을지 모른다. 우리 역시 약소국으로 안보우산을 찾기도 했지만 지금 남북 관계에서는 의심할 것 없이 강국입장이어서 약체인 북이 남쪽에 대고 공갈을 해대는 것이다.

최근 1년여간의 행태를 연결해서 보면 북은 치밀하게 작정한 듯하다. 개성공단 문제만 해도 겉으로 드러나는 대로 돈 문제인지,아니면 공단 폐쇄인지,또 긴장고조 전술의 한 방편인지 아직 노림수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렇게 된 데는 들쭉날쭉한 대북정책으로 분명한 메시지를 주지 못한 우리 정부에도 원인은 있다. 앞으로 정부가 종합적으로 잘해 나가야 하는 이유다.

아무튼 이번 기회에 항구적 평화의 비용은 얼마나 되고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인지를, 특히 경제적 관점에서 한번 냉정하게 계산해보면 좋겠다. 단기적으로는 평화유지 비용이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통일 비용이 될 터다. 밀실지원,무작정 퍼주기라고 비판받았던 것과는 다른 차원이어야 하고 국민적 합의와 지지를 바탕으로 해야 함도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