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구속 직후인 22일 곧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서면 질의서를 보낸 것은 그만큼 노 전 대통령의 혐의 입증에 자신이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외견상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등을 내세웠지만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진술과 정 전 비서관에 대한 조사로 수사를 거의 마무리지었다고 보고 지금까지 확보한 혐의사실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의 반응을 먼저 보겠다는 것이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22일 "(노 전 대통령의) 진술 없이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며 "(확인된) 혐의사실에 일치되는 부분을 보고 아닌 부분은 직접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번 주말 안으로 노 전 대통령 측의 답변이 올 것으로 보고 있으며,답변을 신속히 검토해 소환일정을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정 전 비서관을 통해 확인한 혐의는 '상식적 수준'에서도 노 전 대통령이 알고 있었을 만한 부분이 많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검찰에 따르면 정 전 비서관은 2006년 11월~2007년 6월 사이 박 회장과 그의 비서실장 정승영 정산개발 대표 등을 수차례 만나 경남은행 인수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관련 경제부처 공무원과 이들의 면담을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2006년 11월~2007년 12월에는 박 회장 측으로부터 베트남 화력발전소 건설사업 수주를 범정부차원에서 지원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청와대 경제정책 관련 비서관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도 받고 있다.

그러나 정 전 비서관은 이 같은 사실과 함께 12억5000만원을 빼돌린 혐의를 모두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노 전 대통령은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검찰은 이날 오후 정 전 비서관을 서울구치소에서 불러내 15억5000만원과 청와대로 건너간 100만달러,노건호씨에게 건너간 500만달러 등과 노 전 대통령과의 연관성을 집중 수사했다.

한편,정 전 비서관은 15억5000만원을 지인 두 명의 차명계좌에 담아 여러 차례 돈세탁을 하며 자금 출처를 감췄지만 결과적으로 '진술 번복' 때문에 검찰에 덜미가 잡히는 자충수를 뒀다. 정 전 비서관은 애초에 3억원을 "자신이 받은 돈"이라고 진술했으나 권양숙 여사가 "(내가) 지시해 정 전 비서관에게(박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아오라고 했고 채무변제에 다 썼다"고 주장하면서 권 여사의 주장대로 진술을 바꿨다. 그러나 오히려 검찰은 노 전 대통령 측이 뇌물수수 혐의 등을 벗기 위해 권 여사를 내세웠다고 보고 3억원에 대한 수사를 전면 확대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3억원이 모 금융기관의 차명계좌에 들어간 사실을 확인했고 이에 연결된 여러 차명계좌를 줄줄이 발견,12억5000만원를 찾아내는 예상 외의 성과를 거뒀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짓는 대로 노 전 대통령을 오는 5월 초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