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지 과시 불구 개성공단 재협상 부담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21일 남북 당국자간 첫 접촉은 현정부에 남북관계에 있어 새로운 가능성과 부담을 동시에 안겨준 것으로 평가된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1년2개월만에 이뤄진 이번 남북 당국자간 첫 공식 접촉을 통해 정부는 대북 대화의지를 드러내고 국민의 신변보호 및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추구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입증해 보였다.

반면에 정부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참여 문제와 `개성접촉'이 겹치면서 정부 부처간 정책 혼선을 노출했다.

개성공단 폐쇄 위기는 넘겼지만 북한의 일방적 계약파기로 기존 개성공단 관련 계약을 재검토하는 협상을 벌여야 하는 새로운 부담도 떠안게 됐다.

◇남북대화의지.억류자 해결노력 과시 = 북한은 현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협상하고 한국은 배제하는 이른바 `통미봉남전술'을 노골화하며 남북대화를 거부해왔다.

이로 인해 현정부가 출범한 이후 지난 1년 2개월 동안 남북간에는 번듯한 남북대화 한 번 열리지 못했고 한반도는 대결국면으로 치달아왔다.

하지만 계속되는 진통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당국간 첫 대좌에 나섬으로써 비록 제대로 모양새를 갖추진 못했지만 남북대화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과시한 것이다.

또 정부는 나름대로 원칙을 갖고 협상에 임해 7차례에 걸친 예비접촉을 거쳐 본접촉을 이끌어낸 것을 물론 북한의 주장에 맞서 할 말은 하는 단호함도 보였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워낙 대결국면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이런 의지만으로 남북간에 지속적인 대화가 이어질 것이라고 속단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북측에 억류돼 있는 개성공단 근로자 유모씨의 신변안전 및 남북관계의 안정적 유지를 고려, PSI 전면 참여 발표를 유보하는 결단을 내림으로써 국민 신변안전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점도 부각시켰다.

정부는 이날 "이번 접촉은 구체적인 의제를 명시하지도 않는 등 여러가지 형식상 문제가 있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억류중인 근로자 문제가 국민 전체, 남북관계 전반의 기본이 되는 엄중한 문제로 인식했기 때문에 대표단이 개성에 간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 뿐만아니라 이번 접촉에서 정부는 북한의 남북합의서 무효 선언 등 긴장조성 행위 철회를 촉구하고 국가 원수에 대한 비방.중상 중지 등을 촉구하는 기회를 가졌으며 남북관계 현안해결을 위한 남북 당국간 차기접촉을 제의, 대화가 지속될 수 있는 발판도 마련했다.

◇PSI 둘러싼 정책혼선 노출, 개성공단 재협상 부담 = 그러나 부정적인 결과도 적잖이 드러났다.

무엇보다도 정부는 PSI 전면가입 방침을 정해놨다가 북한의 당국자 접촉 제안이 나오자 PSI 발표를 연기하는 등 정책결정을 놓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드러냈으며 이 과정에 부처간 입장차가 드러나면서 내부갈등설까지 터져나왔다.

또 개성공단 사업과 관련, 북측으로부터 기존에 남측에 제공해오던 모든 제도적 특혜조치를 재검토하겠다는 통보를 받음에 따라 정부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향후 북한과 재협상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또 이번 일을 계기로 북한이 `개성공단 카드'를 대남압박용으로 사용할 가능성도 있음이 거듭 확인됐다.

만일 북한이 당장 북측 노동자 임금 현실화를 요구하고 이에 불응할 경우 개성공단 폐쇄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히면 정부로선 계속 북측 요구에 휘둘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반대로 기업들의 부담가중과 북측의 억지 등으로 정부 스스로 폐쇄를 검토해야할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이번 접촉은 또 북한에 억류된 근로자 유씨 문제와 관련, 정부가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점도 드러냈다.

정부는 이날 유씨와의 접견 및 신병인도를 요구하고 북한이 즉각 석방하지 않을 경우 강력히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막상 `이번 접촉과 무관한 사안'이라며 북측이 거부하자 결국 유씨 접견 요구마저 포기했다.

이 때문에 유씨 사건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PSI와 맞물린 대북정책 혼선과 억류자 문제에 대한 무대책 등으로 인해 정부의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남남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는 점도 적지않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개성공단과 관련한 북측의 이번 '중요한 결정'이 북한 당국으로서는 잘되면 적잖은 잇속을 챙길 수 있는 반면 잘못되더라도 크게 잃을 것 없으면서도 잘되든 못되든 남남갈등은 조장할 수 있는 다목적 카드로 보이는 이유들이다.

(서울연합뉴스) 김병수 기자 bingsoo@yna.co.kr